1985년, 한 권의 시집과 함께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름이 있었다. 시인 송명희(63). 중증 뇌성마비를 안고 태어난 그는 골방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시’라는 언어로 찬양을 시작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갖고 있지 않은 것 가졌으니….”(시 ‘나’ 중에서)
가녀린 호흡으로 써 내려간 그의 시들은 강인한 생명력을 입은 채 멜로디와 만나 수많은 이에게 울림을 줬다. 그는 40주년을 맞아 또 하나의 시집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집 발표회를 일주일 앞둔 지난 13일, 그 이야기가 궁금했던 기자에게 송명희는 이런 제안을 해왔다.
‘말이 느리고 목소리도 작아요. 손가락 하나로 타이핑을 해서 느리지만 태블릿으로 문자를 보낼 수 있어요.’ 그날부터 매일 저녁, 시인과 기자는 온라인으로 연결된 ‘조금 느린’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가 전해온 응답은 가슴 깊은 곳에서 끌어낸 시에 대한 진심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머금고 있었다.
근황을 묻는 첫 번째 문자에 그는 “누군가 심심하지 않냐고 물어보면 제발 심심해보고 싶다고 한다. 하나님을 만난 후로 늘 분주하고 바쁘게 산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환갑이 넘어 스피드가 없다. 스물셋 소녀가 중년을 넘어 주니어 노년기가 됐다”는 농 섞인 문자와 함께 40년 전 사진을 보냈다. 1985년 ‘빛과 소금’ 6월호에 실린 흑백사진 속엔 손목이 꺾이고 상체가 굽혀진 채 얼굴이 바닥을 향한 모습과 고개를 들어 높은 곳을 바라보는 그의 옆모습이 담겨 있었다.
깨진 질그릇에서 보배로운 그릇으로
1963년 6월, 송명희는 태어나자마자 생명을 잃을 뻔했다. 의사의 부주의로 소뇌를 다쳤다. 가망 없단 이야기를 들었지만 새벽녘 딸꾹질 소리와 함께 다시 살아났다. 살아남은 그 순간부터 병약한 몸과 언어장애로 세상의 벽 앞에 놓였다. 또렷하지 않은 말, 가눌 수 없었던 몸은 장애가 장해로 여겨지던 사회적 시선에 찔리고 내몰리며 그를 골방에 가뒀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공간에서 책을 통해 세상을 배웠고 열여섯 살에 하나님을 만나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고백하듯 적은 문장들이 시집과 찬양 음반으로 동시에 알려지면서 골방 속 시인의 삶은 1990년대 중반까지 1500회 이상의 국내외 집회를 인도하는 선교사로 바뀌었다. 선교단을 창단했고 저서 30권과 수많은 찬양 가사도 남겼다.
1996년엔 국민배우 박상원과 KBS 열린음악회 무대에 함께 올라 자신의 곡 ‘나’를 부르는 박상원의 목소리에 맞춰 휠체어 위에서 춤을 추는 모습으로 전 국민에게 감동을 줬다. 5년 전엔 같은 무대에서 뮤지컬 배우 홍지민, KBS어린이합창단과 합을 맞추며 “공의와 평등이 있는 나라가 되길 바란다”는 소망을 전하기도 했다. 시인으로서 지나온 삶을 묻는 말에 그는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을 틀 안에 가둘 수 없다”고 답했다.
‘그 나라’를 향해 걷는 오늘
21일 경기도 성남 만나교회(김병삼 목사)에서 열린 시집 발표회에선 송명희가 수의(壽衣)를 짓듯 만들었다는 시 50편이 ‘그 나라’라는 이름으로 소개됐다. 시 ‘그 나라 25’를 붓글씨로 새긴 하얀색 치맛자락을 입고 등장했다. 목소리는 부쩍 가늘어졌지만 30년 넘게 그를 보필하고 있는 박경남 선교사가 동시통역하듯 전하는 송명희의 이야기엔 전과 다를 것 없는 위트와 강인함이 배어 있었다.
‘그 나라 1’부터 ‘그 나라 50’까지 이어지는 시를 관통하는 주제에 대해 그는 “살다 보면 지옥 같은 일이 참 많은데 그 속에서 천국을 느낄 수 있다”며 “이는 돈 집 건강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곁에 계실 때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장에선 열린음악회 못지않은 감동의 무대가 이어졌다. 홍정길(남서울은혜교회 원로) 곽수광(푸른나무교회) 목사, 찬양사역자 송정미 교수 등이 그의 신작을 낭독했고 조준모 한동대 교수는 그의 시에 곡을 입혀 초연을 펼쳤다. 송 교수가 부르는 ‘나’에 맞춰 춤을 추는 송명희의 모습은 시대를 초월한 감격을 줬다.
발표회 진행을 맡은 곽 목사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주님은 나의 전부라고 고백하는 시인 송명희의 삶은 하나님이 한 사람을 통해 보여주셨던 은혜의 역사”라고 했다.
성남=글·사진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