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에 서울장신대 총장 8년의 임기를 마쳤다. 지금까지 쉼 없이 일했으니 이제는 여유를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려고 마음먹었다. 나는 그다음 거취에 대해 기도하지 않았다. 총장으로서의 14년의 생활이 너무 바빠 나를 돌보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있었다. 가정에도 충실하지 못했고 찬송가 작곡하는 일도 집중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건강도 추스를 필요가 있었다. 대전신학대 건축을 마친 후에 이유 없이 체중이 5㎏이나 쭉 빠졌다가 3㎏ 정도 회복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서울장신대 건축 후에 다시 체중이 3㎏ 빠지고는 회복이 되지 않았다.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으나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의사 말로는 과로와 스트레스에서 온 것이니 무조건 쉬라는 것이었다.
몸도 쉬고 마음의 여유도 챙기면서 이제는 그동안 소극적으로밖에 활동할 수 없었던 학자와 작곡가로서의 활동에 매진하고 싶었다. 다만 하나님이 다시 무슨 사역을 원하신다면 순종하겠다는 마음은 가지고 있었다. 나이 60세, 아직 쉴 나이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문 목사님, 제가 은퇴해야 하는데 제 후임으로 저희 교회를 좀 맡아주세요.” 당시 개척해 목회하고 은퇴를 앞둔 이광수 목사님이 갑작스럽게 담임목사 청빙 제안을 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쳐 있던 나는 솔직히 이 제안이 내키지 않았고, 교회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다. “이제는 조금 쉬면서 제 일에 집중하려 합니다. 2주 동안 기도해 보겠습니다.” 내 삶을 되돌아보면,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어떤 제안이 찾아온 것은 분명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 느껴졌다. 하나님께서 내 마지막 사역을 목회로 이끄시는 듯했다.
교회를 목회하기로 정한 지 한 달 뒤에 두 대학에서 총장으로 오라는 제의가 있었다. 두 학교 모두 좋은 대학이었고, 총장으로 사는 삶이 익숙한지라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기도하는 중에 교회가 마음에 걸렸다. 작은 교회지만, 목회하기로 이미 결심한 이상 그 약속을 저버리고 학교로 가는 것은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교회의 요청에 따라 2015년 7월 5일 담임목사로 부임해 맥추감사주일에 첫 설교를 했다. 그러나 교회는 내가 예상하고 기대했던 분위기가 아니었다. 임기 중 세 가지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첫째는 아프리카 콩고에 설립한 대학 운영을 놓고 발생한, 전임 목사와 교인들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일이었다. 둘째는 무려 46억 원에 달하는 교회 부채를 상환하는 것이었으며, 셋째는 헌당식을 하는 것이었다. 모두 쉽지 않은 과제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합력해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기도한 대로 응답하셨다.
위임식 후 나는 강남제일교회 예배당을 한국적인 예배와 음악이 숨 쉬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뒤주를 변형시킨 강대상을 새로 제작해 설교단을 만들고, 전면에 주기도문을 새긴 바탕에 격자무늬 십자가를 설치했다. 헌금함을 한국식 디자인으로 바꾸고, 성찬식 집기는 도자기로 교체했다. 설교 가운은 한복 두루마기를 개량해 입고, 후드는 색동을 비롯한 한국 문화에 맞는 색으로 제작했다. 삼일절, 광복절 등의 예배에는 징과 태극기와 애국가가 사용됐다.
정리=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