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2차 추가경정예산안(추경)에는 장기 연체 중인 개인의 빚을 전액 탕감하는 안이 포함됐다.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 10만명에 대한 채무 탕감 프로그램(새출발기금)을 확대해 원금을 최대 90%까지 깎아주는 내용도 담겼다. 소상공인 1인당 최대 1000만원의 손실보전금을 지급했던 직전 정부와 달리 채무 원금 감면에 초점을 맞췄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거치면서 고통을 겪은 소상공인과 저소득층의 재기를 돕겠다는 취지지만 넘어야 할 산이 남아 있다. 추경안에 담기지 않은 부족 예산 4000억원은 금융권의 협조를 받아 충당해야 한다.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조장할 수 있다는 논란도 일고 있다.
19일 금융 당국에 따르면 정부는 2차 추경에서 ‘장기 연체 채권 채무조정 프로그램’에 4000억원을, ‘새출발기금 제도 개선’에 7000억원을 편성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을 현실화하는 차원이다.
채무 조정은 캠코(자산관리공사)가 출자한 배드뱅크(부실 자산을 인수해 정리하는 전문기관)를 통해 진행된다.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 개인(개인사업자 포함)의 무담보 채권이 대상이다. 중위소득 60% 이하이고 회생이나 파산 등으로 재산이 없어 상환이 사실상 불가능한 차주(돈을 빌린 사람)라면 채권을 전액 소각한다. 재산이 없지는 않지만 돈을 갚을 능력이 부족하다면 원금을 최대 80% 없애주고 나머지도 10년간 나눠 낼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이 같은 방안이 실행되면 113만4000명의 채무 16조4000억원이 소각 또는 조정될 것으로 추산된다.
확대되는 새출발기금은 1억원 이하의 빚을 진 자영업자 중 중위소득 60% 이하를 대상으로 한다. 현재 새출발기금은 원금을 60~80% 감면하고 나머지를 최대 10년간 분할 상환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원금 최대 90% 감면, 20년 분할 상환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2020년 4월~2024년 11월 사업 영위자’였던 지원 대상 범위도 ‘올해 6월까지 영위자’로 넓어진다. 10만1000명이 보유한 6조2000억원이 조정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업 시행을 위한 첫 번째 난관은 재원 마련이다. 배드뱅크 설립 및 운영에는 모두 8000억원이 소요되는데 추경안에 편성된 재원은 절반인 4000억원이다. 나머지는 금융권 협조로 마련할 계획이다. 정부가 민간의 팔을 비튼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전망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금융권과 대체적인 공감대는 형성됐다”고 말했다.
모럴 해저드 우려도 있다. 나랏돈으로 빚을 갚아주는 것은 그간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이들과 형평성에서 어긋난다는 비판이다. 특히 이번에는 부동산 임대 법인이나 유흥업소, 도박장 등 운영자를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지도 않았다. 실행 속도 문제도 있다. 과거에도 취약층 빚을 탕감하는 프로그램이 여럿 시행됐는데, 수많은 서류를 준비해야 하고 심사에 시간이 오래 걸려 중도 포기자가 다수였다. 실제 채권 매입부터 소각까지 1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많았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채권 일괄 매입 등 방식을 도입해 속도도 높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재준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과도한 빚을 줄여주는 미봉책 외에도 장기적인 시각에서 내수를 회복시킬 근본적인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욱 이의재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