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이 세상 초월을 꿈꾸는 아이들

입력 2025-06-21 00:31

“우리 목요일에 폭격당할 예정이라는데, 난 그날 약속 있는데….” 울먹이는 듯한 표정의 10대 소녀가 틱톡 영상 속에서 말한다. 무슨 말인가 싶은데, 댓글이 이어진다. “아니, 나 쉬인(Shein·중국 패스트패션 쇼핑몰)에 주문했는데….”

여기서 등장한 목요일은 이스라엘이 지난 18일(현지시간) 엑스를 통해 이란 아라크 중수로 시설 등에 대한 폭격이 있을 것이라며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린 19일이다. 틱톡으로 확산한 영어 밈은 그런 폭격 예고 앞에 쉬인에서 주문한 옷 배송 등을 걱정한다는 10대 특유의 ‘드립’, 현실을 비꼬는 블랙 유머인 셈이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이란 교전 상황의 심각성, 무엇보다 무고한 인명 피해를 낳을 전쟁의 무서움을 생각하면 그저 웃어지지 않았다. 문제의 목요일, 이란 핵시설에 대한 폭격은 실제로 이뤄졌다. 더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최고지도자 제거를 시사하고 이란의 미군기지 타격 준비설까지 나오며 확전 우려는 커지고 있다. ‘유머를 다큐로 받지 말라’지만 나도 모르게 “요즘 애들은 심각한 게 없다”며 혀를 찼다. 이런 상황이 처음도 아니지 않은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때 본격 활용된 SNS는 지난해 가자지구 사태를 거치며 또 다른 전쟁터가 됐었다. 전쟁 정보를 알리던 장이 전쟁 감정을 마구잡이로 소비하고 희화화하는 장으로 변질됐고, 그 중심에 SNS 주이용층인 10, 20대가 있다는 우려도 본격화됐다. 국내 이슈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말 계엄 사태나 탄핵 국면 등 극단적 정치 갈등 상황과 사건 속에서 정치를 비꼬는 밈은 아이들의 단골 콘텐츠였다.

이런 현상 속에서 요즘 세대는 어릴 때부터 모바일을 통해 자극적인 콘텐츠에 노출돼 폭력과 혐오에 무감각해진 세대, 그래서 그런 콘텐츠를 그저 소비하는 세대, 가치 판단이 사라진 세대 등으로 규정돼 왔다. 세상의 문제를 비판하고 바꾸려 하지 않고 관조하는 데 그친다는 평가도 포함된다. 이런 평가와 규정엔 요즘 세대를 탓하는 의미가 어떻게든 담겨 있다.

그렇게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지난 3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세계오순절대회(PWC)의 한 워크숍 세션에서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다음세대 사역 전문가인 영국의 테리 파크먼 박사는 Z세대와 알파세대에 대해 “그들은 탈가치의 세대가 아니라 방향을 잃은 세대”라고 말했다. 탈가치를 추구하는 세대가 아니라 탈가치의 세상에 태어난 세대라는 얘기였다. 주어진 가치를 거부하고 각자의 선택과 취향을 추구하려 했던 포스트모더니즘 세대는 적어도 존재하는 방향에 반발할 방향이라도 있었다면 지금 아이들은 어떤 방향성도 없는 혼란 그 자체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는 채 전쟁과 폭력, 혐오, 환경 파괴 등 거대한 위기를 매일같이 마주하는 아이들의 자조적 유머는 결국 무력감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비관적인 이야기 같지만 파크먼 박사가 한 이야기엔 반전이 있었다. 방향을 갖기 싫어하는 세대가 아니라 잃은 세대라는 건 ‘방향을 찾고 싶어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다. “불안한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초월적인 가치, 진짜 목적, 변하지 않는 진리를 갈구하고 있다”는 분석은 어른들, 특히 교회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이 세상을 초월하고 싶은 아이들은 온라인에서 무엇이든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틱톡에서 마녀토크를 검색해보면 얼마나 쉽게 아이들이 지배될 수 있는지 알게 될 겁니다.” 푯대가 세워져 있지 않은 세상에서 어떻게든 걸어 나가야 하는 아이들이 자기 나름의 답지를 찾아 여기저기 헤매다 함정에 빠지고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분명한 진리를 담은 복음이 있는데, 아이들은 세상을 초월할 답이 어디 있는지 몰라 불안한 채 꿈꾸고만 있다면 이건 누구의 잘못일까. 푯대 없는 세상의 책임은 아이들에게 있지 않다. 고민할 과제는 분명해 보인다.

조민영 미션탐사부장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