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음악의 영원한 순간 속에서

입력 2025-06-20 00:32

집중호우에도 중단 없는 공연
악천후까지 즐기는 관객들
그들이 만나 전설을 만든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순간에 대한 끝없는 동경이 있다. 1996년 5월 25일 토요일, 지금은 KT&G 상상마당이 자리한 홍대 앞 주차장 사거리에서 열렸던 ‘스트리트 펑크쇼’가 내뿜었다는 날것의 열기는 ‘인디 30주년’을 맞이한 올해가 끝날 때까지 때마다 끌어올려질 전설 같은 순간이다.

역시 20주년을 맞이한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의 전신인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의 후일담은 또 어떤가. 태풍과 집중호우가 집어삼킨 1999년 국내 최대 규모의 록 페스티벌에서 기본적인 대피 방법조차 몰라 우왕좌왕했던 역전의 용사들이 풀어주는 이야기는 몇 번을 들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매번 낭만의 시절로 쏟아지듯 빨려 들어갔다.

김정미라는 가수가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는 사람만 아는’ 가수였던 그는, 얼마 전 인기리에 마무리된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오프닝 ‘봄’을 부른 사람으로 이제 꽤 유명해졌다. 한국 대중음악 역사 속 1960·70년대를 든든히 받치는 펄시스터즈, 김추자, 박인수, 장현, 이정화 등의 가수가 즐비한 ‘신중현 사단’ 가운데에서도 그는 유독 독특한 위치에 자리한 인물이었다.

신중현이 직접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이만큼 소화해 낸 가수는 없었다”고 언급할 정도로 그의 음악에 최적화된 가창을 들려주는 인물이자, 1978년 마지막 앨범 발표 이후 음악 활동은커녕 대중 앞에 어떤 모습도 드러내지 않는 신비주의적 행보로 그대로 시대에 흡수되어 버린 이름이 됐다.

그런 그의 음악이 조금씩 인구에 회자하기 시작한 건 마지막으로 활동한 지도 20여년이 넘어가던 2000년대 초반이었다. 처음에는 ‘음잘알’(음악 잘 아는 사람) 위주로 서서히 퍼지던 입소문은 금세 국내외를 비롯해 새로운 한국 대중음악을 찾아다니는 귀 밝은 사람들의 고막에까지 닿았다.

김정미의 LP를 구하는 해외 마니아가 수두룩하다는 소문이 쉬지 않고 들려왔고, 덕분에 앨범은 2000년대에만 수차례 재발매되었다. 신중현과 김정미의 호흡이 절정에 달했다는 평가를 받는 앨범 ‘Now’(1973)는 지금 시대 가장 사랑받는 옛 앨범 가운데 하나이자 신중현을 대표하는 명반이라 부르는 이가 적지 않을 정도로 뚜렷한 존재감을 가진 작품이 됐다.

재패니즈 브렉퍼스트라는 가수가 있다.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미셸 자우너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인디 밴드로 국내에서는 ‘일본 조식’이라는 귀여운 별명으로도 부른다. 말기 암 투병을 하는 엄마 곁에서 느낀 몇 마디 알량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그러모아 만든 앨범 ‘Psychopomp’(2015)와 에세이 ‘H마트에서 울다’(2021)로 평단과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여러모로 한국과의 인연이 깊을 수밖에 없는 그는 2022년 그래미상 신인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후 몇 번이고 한국을 찾았다. 엄마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과 조금씩 가까워지고 마음을 나눴다.

지난해인 2024년 1년 동안 한국에 머물며 한국어학당에서 정식으로 한국어를 공부한 그가 지난 주말 강원도 철원에서 열린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일요일 무대에 섰다. 이번 공연을 위해 밴드 이외에도 다양한 세션을 불러 풍성하게 무대를 준비한 그의 정성이 무색하게도 라이브의 시작과 함께 억수 같은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다행인 건 어떤 악천후에도 즐길 수 있게 진화한 프로 관객들만 모인 자리였다는 점이다.

정갈하게 한국어로 쓴 꽤 긴 편지를 관객들에게 직접 읽어준 그는 마지막 곡이라며 익숙한 기타 리프를 연주했다. 김정미의 ‘햇님’이었다. 엄마의 나라에서 엄마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엄마의 말을 모두 이해할 수 있게 된 딸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환호했다. 그리고 모두가 웃었다. 공연 마지막까지 하늘엔 구멍이라도 난 것 같았다.

나에게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영원의 순간 하나가 생겼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