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문재인 반면교사’만 잘해도 성공이다

입력 2025-06-20 00:39

취임 초 친기업, 친성장 행보
문재인 '진영 챙기기'와 대조

첫 한·일 정상회담서 미래지향
이재명 외교 불안감 완화해

통합 거부, 진영 함몰 때 위기
반시장 법안 막는 데 애쓰길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9일 만에 재계와 회동했다. 정상들과는 미국에 이어 일본 중국 순으로 취임 통화를 했다. 첫 공식 일정은 자본시장의 상징 한국거래소. 경제 정책의 틀을 정통 관료(김용범 정책실장), ‘기업 혁신’ 전문가(하준경 경제성장수석)에 맡겼다. 전임 정부의 일본 강제징용 3자 변제 해법에 대해 “국가 간 관계는 일관성이 중요하다”며 계승을 시사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당선 후 49일 만에 기업인들과 자리를 함께했다. 미국 다음에 중국과 통화했다. 취임 직후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 발표로 대외 일정을 시작했다. 시민단체 출신(장하성 정책실장), 소득주도성장론 설계자(홍장표 경제수석)로 경제 컨트롤타워를 구성했다. 전임 정부의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재협상을 주장했다.

보수 대통령 탄핵 이후 당선돼 곧바로 직무를 본 진보 대통령. 이런 공통점에 여론의 비교가 시작됐다. 문 전 대통령은 처음부터 거침이 없었다. 촛불 민심을 오도하고 진보 진영 챙기기에 혈안이 됐다. 노·노 갈등과 비용 증가 우려가 큰 ‘비정규직 제로’에 이어 취임 2호 지시가 ‘역사 국정교과서 폐지’였다. 민생과 동떨어진 이념적이고 사회 갈등을 유발하는 의제가 정권의 출발을 알렸다. 5년 내내 ‘정규직 vs 비정규직’ ‘자영업자 vs 알바생’ ‘집주인 vs 세입자’ ‘기업 vs 노동자’ 식의 갈라치기 국정 운영 예고편이었다.

이재명 정권은 문 정권의 적통이다. 과거 발언에서 문 전 대통령보다 더한 반기업, 반부자, 친중·반일 색채가 표출됐었다. 대선 기간 아무리 ‘실용’을 외쳐도 집권 후엔 ‘문재인류 발톱’을 드러낼 거라 여겼다. 당선 후 보름여. 예상과는 다소 다른 흐름이다. 주변의 우려에 문 전 대통령은 개의치 않았고 이 대통령은 신경을 쓰는 모양새다.

한·일 문제만 봐도 그렇다. 이 대통령은 18일 캐나다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취임 뒤 첫 정상회담을 갖고 “작은 차이를 넘어서자”고 말했다. 취임 후 통화를 비롯해 지금껏 과거사 언급 없이 미래지향적 협력을 강조했다. 윤석열정부의 대일 정책에 대해 “일본에 조공을 바친다”며 시비를 걸던 야당 대표 모습이 아니었다. 반일주의자 꼬리표 떼기에 진심이 보인다.

반대 진영의 시선을 의식하고 시장원리를 견지하고 경제 살리기에 경주하는 건 다행이다. 때마침 증시가 달아오르고 있다. 코스피 3000이 눈앞이다. ‘이재명 랠리’라고 하지만 ‘(반기업)이재명에 대한 안도 랠리’가 정확한 표현이지 싶다.

물론 ‘시작이 반’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 정권 초 분위기가 좋은 건 맞는데 불길한 징조도 엿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이 내각 구성 후 바로 통과시키겠다는 노란봉투법과 양곡법의 운명은 이 대통령이 표방한 ‘실용적 시장주의’의 가늠자다. 두 법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걸 떠나 문재인정부서도 통과되지 않은 법이다. 입만 열면 노동자(노란봉투법)·농민(양곡법)을 외치던 문재인정부조차도 고개를 저었다면 물어보나 마나다. 노사관계, 재정 부담의 폐해가 얼마나 크기에 그랬겠나.

한 달에 두 번 공휴일에 대형마트 문을 닫게 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도 여당이 추진 중이다. 대형마트와 지방자치단체, 전통시장 간 협의로 평일에도 쉴 수 있도록 한 걸 되돌려 놓겠단다. 심지어 여권에선 복합쇼핑몰·백화점의 공휴일 의무휴업일 도입 법안도 발의했다. ‘전통시장 지원=선’이란 시각부터 문제인데다 대형마트가 문을 닫으면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이 아닌 쿠팡을 찾는 추세도 놓치고 있다.

내란 청산 작업도 특검 규모를 볼 때 ‘적폐 청산 시즌2’ 느낌이 난다. 복합위기 속에 놓인 대한민국 현실에서 정쟁으로 흐를 소지를 이 대통령이 잘 차단해야 한다. 외과 수술하듯 정밀하고 필요한 부분만 도려낸 뒤 통합의 대열을 꾸려야 한다. 남북 문제는 서두르고 한·미 관계는 속도가 더딘 상황도 개선이 필요하다.

이 대통령이 극복할 건 계엄으로 자폭한 윤석열정부만이 아니다. 제 편의 들보를 보는 노력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 통합을 외면하고 이념으로 국정을 이끈다면 거시경제, 외교, 재정, 부동산 등 각 분야에서 불가역적 생채기가 날 수 있다는 점을 문재인정부는 보여줬다. 환경 변화에 유연한 실용주의가 정책에서 꼭 실천되길 바란다. 문재인 반면교사만 잘 해도 성공할 것이다.

고세욱 논설위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