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했다. 서구에서 이제 기독교의 신학적, 도덕적 주장은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됐다. 콘스탄티누스 시대부터 시작된 서구 기독교는 이제 그 흐름이 바뀌고 있다. 카이사르 시대가 다시 한번 다가왔다. 이교도 신들은 우리 세계에 거주하면서 우리 사회를 하나로 묶고 도덕적 상상력을 알리는 영적 실마리가 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점점 더 이교적으로 변해가는 지금 신실하게 살려고 발버둥 치는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도움을 주는 모델은 바로 고대 교회이다. 우리는 지금 이교와 기독교 사이 고대에 있었던 투쟁이 새롭게 반복되는 현실을 경험하고 있다.
고대 이교도 세계와 지금 세계 사이의 유사점은 바로 눈에 보이는 세상에 대한 전적인 관심이다. 극히 짧은 시간의 파편을 향한 인간의 편협한 초점은 TS 엘리엇이 부르는 것처럼 ‘현대 이교도’의 한 형태이며 지금 서구를 지배하고 있다. 고대 이교도와 현대 세속주의자의 유일한 관심사는 이 세상과 당면한 문제들이다. 그들은 이 세상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 더 중요한 것은 기댈 수 있는 소망조차 없다는 사실이다.
눈에 보이는 세상에 대한 관심은 오늘날 사람들이 즉각적인 세계와 내면을 실재의 중심으로 파악하는 ‘내재적 프레임’을 설파한 철학자 찰스 테일러와 관련이 있다. 더 이상 초월적인 것도, 또 시간을 초월하는 실재도 없다. 우리 위에 계시는 하나님도 없고 우리를 기다리는 천국도 없다. 이교 세계에서 로마 제국은 그들의 내재적 프레임이었고 개인이라는 존재는 그것이 제국의 영광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유용한 경우에만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다른 관점에서 움직인다. 이 세상이 전부는 아니며 그리스도께서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때까지 하나님의 왕국은 결코 충만하게 보이지도 않고 실현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주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 태어났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본질적으로 항상 본향을 그리워하는 순례자이다.
카이사르 시대에 교회가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문화적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의 형상에 따른 거룩함과 일치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문화적 성화’라고 부르는 것이다. 문화적 성화 과정을 위해서는 신앙의 수호,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복음 전파, 그리고 기독교 영성이 주는 미덕의 가시적 구현이 필요하다. 오래전 그들은 비록 사회의 언저리에서 시작했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이 세상에 훨씬 더 나은 것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천천히 그리고 꾸준하게 이웃에게 설득했다.
폴리카르푸스, 순교자 유스티누스, 리옹의 이레나이우스 같은 그리스도인은 문화 엘리트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사도들의 발자취를 따라 하층에서 일하면서도 이교 세계에서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교회를 인도했다. 그들은 원로원이라는 주요 자리에 앉지도 않았고 다양한 철학 학교를 가득 채운 지식인 그룹도 아니었다. 그 대신 그들은 유기적으로 활동했다. 진지하고 강력한 형태의 교리 교육과 제자도부터 시작해 사람들을 기독교 교리와 도덕으로 천천히 인도했고 결국 그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교회는 부서진 사람, 낙담한 사람, 더 나은 세상 보기를 갈망하는 사람을 위한 학교였다. 그리고 삶에 대한 기독교적 비전은 진정한 인간 번영을 향한 길을 인도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공적 생활에서 성령의 열매가 필요함을 강조했던 초대교회로부터 배울 수 있다. 좋은 삶에 대한 비전을 제자 훈련으로 받은 초대교회는 정치, 사회 영역에 접근하는 방식에 있어서 사람들의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그들은 주님께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다시 오실 것이며 그때 끝나지 않는 왕국을 세우실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믿음을 붙잡고 그들은 소망 가운데에서 믿음의 길을 걷도록 서로를 격려했다.
우리 세계와 고대 세계 사이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우리는 기독교 역사의 첫걸음을 시작했던 그들과 달리 기독교 문화의 소멸을 지켜보고 있다. 우리는 ‘신들이여, 만세’라고 외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이미 그런 세상을 겪은 경험이 있다. 하나님은 죽지 않았다. 따라서 오래 전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우리를 끝까지 지켜주실 것이다.
◇스티븐 프레슬리는 미국 남침례신학교 교회사 부교수이다. 저서로 ‘문화 성화, 초기 교회처럼 참여하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