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문성모 (20) 작곡 달란트 주신 하나님… 찬송가 작곡으로 은혜 보답

입력 2025-06-20 03:07
문성모 목사가 2011년 서울 중구 영락교회에서 출판감사예배를 드리고 있다. 문 목사 제공

나는 작곡가로서 서울예고와 서울음대 시절 비교적 많은 작품을 썼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그 후 여러 곳에서 발표됐다. 1979년 11월 13일, 종로구 원서동에 있는 공간사랑 소극장에서 ‘문성모 교회음악작곡발표회’를 개최했다. 그리고 81년 11월 6일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열린 제23회 서울음대 국악과 정기연주회의 위촉작곡가로 선정돼 작품 ‘거문고 가야고 젓대를 위한 변주적 시나위, 살로메’를 발표했다. 그해 12월 26일에는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서 열린 제4회 신국악예술인회 주최 창작국악발표회의 위촉작곡가로 작품 ‘거문고와 장고를 위한 부활(復活)’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동아 콩쿠르 입상작이었다.

그러나 83년 목사가 된 후부터는 작곡에 전념할 수 없었다. 틈나는 대로 찬송가만 작곡했다. 89년 잠시 귀국하면서 독일 유학 중에 작곡한 100곡의 찬송가를 모아 8월 25일 ‘우리가락찬송가 제1집, 나의 힘이 되신 주’를 출판했다. 그리고 9월 25일에는 그동안 작곡했던 국악기를 위한 작품을 모아 ‘한국악기를 위한 교회음악 제1집, 부활(復活)’을 출판했다. 한국국악선교회장 황대익 목사의 후원으로 책을 출판하게 됐으니 감사한 일이다.

독일에서 귀국 후에는 황 목사의 국악선교회를 도와 음반 제작을 위한 국악 찬송가를 작곡했다. 이후 교회 목회와 학교 총장으로서 사역하면서도 틈틈이 찬송가 작곡에 열중했다. 대전신학대 총장 시절 공주교대 교수 민미란 선생이 창단한 가야금 연주단 청흥의 정기연주회를 위한 가야금 곡들을 써서 발표하기도 했지만, 나는 시간이 나면 주로 찬송가를 작곡하면서 살았다. 찬송가 외의 작품을 쓸 시간도 없었지만 관심도 점점 멀어졌다. 나는 찬송가를 쓰면서 개신교 공인 찬송가 뒤에 붙어 있는 교독문 중 시편 66개의 가사에 멜로디를 붙여 교창송(Antiphon)으로 만들었다. 시편을 노래로 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인데 한국에는 시편 찬송이 없는 것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우리가락찬송가와 시편교독송’ 표지.

이렇게 2011년 10월 28일 두 번째 찬송집인 ‘문성모 찬송가 330곡집-우리가락찬송가와 시편교독송’이 출판됐다. 첫 찬송집을 펴낸 지 22년 만이니 만시지탄의 감회와 함께 찬송가 작곡을 게을렀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이 찬송집의 출판 감사예배는 그해 11월 8일 영락교회 선교관에서 거행됐다.

나는 이 찬송집에 들어 있는 가사를 모두 영문으로 번역했다. 번역은 고 김용복 박사의 사모 김매련 선생에게 부탁했다. 이 ‘우리가락 찬송가’ 영문판은 2013년 10월 25일 ‘Our Melodies, Our Hymns’라는 이름으로 출판됐다. 이 영문판을 만든 이유는 혹시라도 한국 찬송가를 필요로 하는 외국 교회가 있을 경우를 대비한 것이고, 적극적으로 한국 찬송가를 세계 교회에 알릴 필요가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은 때마침 그해 10월 30일부터 열흘 동안 개최된 WCC 제10차 부산총회를 위해 유용한 자료가 됐으니,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였다. 대회 중 내가 작곡한 찬송가 ‘혼자 소리로는 할 수 없겠네’와 ‘예수님은 누구신가’ 등이 영어와 프랑스어로 번역돼 예배 중에 불렸다.

정리=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