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산업 위기 도움 될 방법 고민중… 포스트 봉준호 찾아야”

입력 2025-06-20 00:00 수정 2025-06-20 00:00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부산영화제 서울사무소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정 집행위원장은 “내부적으로는 관성화된 조직 문화를 혁파하고, 영화 산업 측면에선 이 시기에 부산영화제가 할 일이 뭔지 고민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한형 기자

코로나19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의 등장으로 영화산업이 전례 없는 보릿고개를 겪고 있다.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줄면서 극장산업이 위기에 빠졌고, 투자 심리가 위축되자 영화 제작이 어려워졌다. 산업 전반에 먹구름이 낀 가운데 부산에선 또 한 번 찬바람이 불었다. 2023년 인사 파행 논란과 이사장, 운영위원장, 집행위원장 등 수뇌부의 집단 사퇴와 성폭력 사태를 겪었고, 영화제 예산마저 삭감됐다.

올봄 부산영화제는 정한석 신임 집행위원장을 선출하고 재도약을 선언했다. 정 신임 위원장은 지난 11일 국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산업이 정체기를 겪으면서 난관을 극복할 해법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오가야 할 시점이다. 지금 부산영화제가 할 일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집행위원장 자리가 2년 가까이 비어있었다. 여러모로 어깨가 무거울 것 같다.

“위원장 선정 절차가 막바지에 이를 때까지도 이 자리에 지원할 마음을 먹지 못했다. 수차례 공개모집을 거치다보니 ‘내부 사정을 아는 사람이 책임지고 일하는 게 가장 맞는 방법일 수 있겠다’ 싶었고, 그러다 중책을 맡게 됐다. 더이상 개인적인 부담을 생각할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내가 아니었더라도 이즈음 세대교체는 필요하다고 속으로 생각해 왔다.”

-몇 달 새 조직 재정비와 영화제 준비를 동시에 해야 하는 상황이다.

“2019년부터 부산영화제에서 한국영화 프로그래머로 일해 왔다. 아무래도 국내 영화제이다 보니 한국영화 프로그래머로서 영화 선정뿐만 아니라 게스트 섭외, 이벤트 준비 등 여러 분야에 일이 걸쳐있었다. 그래도 역대 위원장 중에 영화제 살림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지 않을까 한다. 자리를 맡고 나서 초현실적으로 바빠 무중력 상태에 있는 느낌이다. 프로그래머로 일할 때보다 조망하고 추진할 게 많아서 하나씩 차례대로 해보고 있다. 어려움이 동반되는 건 당연하다.”

-마침 부산영화제가 30주년을 맞이하는 중요한 해다.

“한국영화 프로그래머를 시작할 때 한국영화 100주년이었고, 30주년이 되는 해에 집행위원장이 됐다. 일을 잘 몰고 다니는 느낌이다.(웃음) 부산영화제를 좋아해 주셨던 분들, 새롭게 찾는 분들이 보고 싶은 작품을 더 많이 볼 수 있도록 하려 한다. 특별전 규모를 키울 계획이다. 올해는 아시아 특별전을 여는데, 1996년 이래 최고의 아시아 영화 100편을 선정하고 그중 10편의 감독과 게스트를 초청한다. 21세기 최고의 아시아 감독들을 모신다는 의미다.”

-영화제 예산은 전년 대비 5000만원 가령 삭감됐다.

“사실 국내 소규모 영화제들이 더 큰 어려움에 처해 있다. 영화제는 일종의 문화 창구 역할을 하는데 예산이 줄면 관객과 지역사회에 돌아가는 문화 혜택이 줄어든다. 부산영화제의 경우 한국과 아시아의 영화 문화에 있어서 그 역할을 인정한다면, 국가의 지원도 지금보다는 훨씬 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운영 방식을 바꾸면 같은 예산으로 더 다양한 프로그램을 꾸릴 수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내년부터는 상황이 나아지길 기대한다.”

-올해부터 경쟁 부문을 도입하기로 한 게 부산영화제의 가장 큰 뉴스다. 그 배경이 궁금하다.

“기본적으로 ‘우리도 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있었다. 경쟁 부문은 사실 어느 정도의 규모와 영향력이 없으면 추진하기 어렵다. 올해가 영화제 30회를 맞는 기념비적인 해라면, 올해를 기점으로 ‘아시아 영화의 허브’를 넘어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결론이 나왔다. 아시아 영화에만 경쟁 부문을 도입하는 건 영화제의 가장 중요한 부문이었던 뉴 커런츠 섹션을 고양한다는 의미가 있다. 언젠간 전 세계 영화를 대상으로 확장할 것이다. 올해도 갈라 섹션에는 비아시아권 작품이 상당히 많다.”

-한국 영화계가 고전하는 상황에서 부산영화제의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위기를 인정하고, 도움이 될 방법을 찾고 있다. 정책적으로도 새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오가야 할 시점이다. 이 시기에 영화제가 할 일이 뭔지 고민하며 올해 부산영화제 프로그램을 짜고 있다. 영화제는 영화인들이 만나는 판을 깔아주는 곳,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이다. 예산이 녹록지 않지만 상업영화와 독립영화가 각각 가지고 있는 문제점, 정책적인 문제 등 영화 산업에 관해 이야기하는 포럼도 재개하려고 힘을 들이고 있다. 한국 영화 위기를 진단하고, 해결 방법을 모색하며 아시아 영화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자리를 가지려 한다.”

-취임 후 칸 영화제를 찾았다. 어떤 분위기를 느꼈나.

“올해는 영화진흥위원회가 매년 진행했던 ‘한국영화의 밤’ 행사를 하지 않고, 부산영화제가 주축이 돼 ‘해피아워 파티’를 했다. 아시아를 포함해 당시 칸에 와 있던 미국, 유럽 등의 매체와 마켓 관련 인사들이 많이 찾아와 우리 영화제가 상당히 영향력 있다는 걸 느꼈고, 한국 영화와 관련해 임무가 막중하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 영화가 이번에 칸 국제영화제에 못 갔다고 해서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의 상황을 낙관적으로만 바라보려고 하는 건 아니다. ‘포스트 봉준호’의 가능성이 있는 역량 있는 신인 감독들이 영화 산업과 어떤 방식으로 맞닿을 수 있는지 방안을 찾는 게 절실하다.”

-연달아 성 비위 사건이 불거졌다. 새 수장으로서 조직 문화를 쇄신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당시에 가슴이 아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 일들이 ‘환부’라면, 곪아 터졌으니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행정적인 면과 조직문화 면에서 장기적으로 개선해 나갈 때다. 잘한 부분은 상을 주고 과실엔 책임을 물어왔어야 옳다. 그런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던 게 이 조직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그러다 보니 시대에 따라가지 못하거나 관성화된 부분이 있어 혁파하려 한다. 디지털 성범죄, 성인지 감수성 교육 등을 늘리기로 했고, 규정도 손보려 한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