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휴일] 바람이 좋다

입력 2025-06-20 00:09

보리밭, 밀밭을 흔드는 바람이 좋고
나뭇잎, 꽃잎에 매달려 잉잉거리는
바람이 좋고 주술적 리듬으로
풀잎들 눕혔다 일으키는 바람이 좋고
풍경을 잡아채 맑은소리를 흘려보내는
바람이 좋고 도라지꽃, 장다리꽃
만나고 오는 향내 나는 바람이 좋고
냇가, 강가 물보라 일으키는 바람이 좋고
길바닥 검은색 비닐봉지 툭툭 차대는
장난기 많은 바람이 좋고
네 몸 안쪽에서 불기 시작하여
바깥의 나를 흔들어대는
풍로 같은 뜨거운 바람이 좋다.

-이재무 시집 '정다운 무관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