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4월 14일, 영국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작은 배에 몸을 싣고 마포를 출발했다. 송파를 지나 팔당을 거쳐 여주, 충주, 청풍까지 한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단양 영춘에 이르러 얕은 수심과 급류를 만나 포기하고 한강을 따라서 오던 길을 내려왔다. 5월 3일이었다. 다시 팔당까지 내려온 뒤 북한강을 따라 가평을 거쳐 춘천까지 올라간 뒤 5주 반이 걸린 한강 답사를 마친다. 비숍은 한강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그에게 한강은 ‘금빛 모래의 강’이었다. 지금은 뱃길 여행은 상상도 할 수 없고, 한강 어디에서도 금빛 모래는 볼 수 없다. 한강의 옛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으로 30여년 강을 연구해온 저자는 1968년 2월 10일을 기점으로 본다. 책의 제목에 ‘1968’이 등장하는 이유다. 바로 그날 한강의 밤섬이 폭파됐다. 저자는 “밤섬 폭파 불꽃은 한강 상실의 신호탄”이라고 표현한다. 밤섬 폭파 이전까지 한강은 일제 강점기 일부 제방 건설이나 모래 준설이 있었지만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밤섬을 폭파한 이유는 여의도 매립을 위한 골재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원래 여의도는 지금보다 3배 정도 더 크고 드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던 섬이었다. 여의도와 마포 사이 한강의 수면 폭은 200m에 불과했다. 밤섬에 나온 흙과 여의도에서 준설된 모래를 약 8m 높이로 쌓아 올리면서 지금의 여의도가 탄생했다. 강폭도 1㎞가 넘게 길어졌다. 여의도는 모래를 준설하고, 준설한 모래로 강을 매립해 택지를 만들고 아파트를 지어 팔아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선례가 됐다. 이후 동부이촌동과 반포, 압구정, 잠실 등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섰다. 여의도 매립과 비슷한 시기에 한강의 양쪽에는 제방을 쌓아 도로를 만드는 강변도로 사업이 진행됐다. 매립이 강 자체를 망가뜨리는 것이라면 강변도로 건설은 강과 인간의 단절을 의미한다. 저자는 “강변을 따라 만들어진 도로는 강으로 가려는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 거대한 장애물”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한강은 망가져 갔다.
저자는 한강 개발의 역사를 구역별로 훑으며 망가지기 전 한강 원형의 모습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제는 볼 수 없지만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대표적인 곳이 난지도다. ‘도(島)’라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원래 난지도는 섬이었다. 난지도를 둘러싸고 흐르는 난지천이 있었고, 홍제천과 불광천도 지금처럼 한강이 아닌 난지천으로 합류해 흘러들었다. 면적도 현재 여의도 면적의 1.2배나 되는 큰 섬이었다. 섬에 살던 70여 세대는 땅콩과 수수를 재배하고 가축을 길렀다. 갈대가 무성하고 새들의 먹이도 풍부해 겨울이면 수만 마리의 철새들이 몰려들던 곳이었다. 난지도가 섬이 아니게 되는 데에는 불과 몇 개월이면 충분했다. 77년 1월 홍수 예방을 목적으로 난치천이 매립되고 그 위에 제방이 만들어지는 공사가 시작돼 5개월 만인 6월에 끝이 났다. 그해 8월 난지도는 서울시의 쓰레기 매립장으로 정해진다. 난지도 개발을 시작할 때만 해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듬해 3월부터 쓰레기 매립이 시작됐고 이후 93년 3월까지 15년 동안 서울의 쓰레기 모여들면서 난지도는 쓰레기 산이 됐다. 그리고 난지도는 ‘하늘 공원’, ‘노을 공원’ 등이 들어선 공원이 됐다.
인간은 자연을 망쳤지만 자연은 스스로를 되살린다. 폭파와 준설 이후 모두가 밤섬은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철새도래지로 거듭나 새로운 명성을 얻었다. 물 위의 밤섬은 사라졌지만 물 밑 밤섬의 뿌리는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밤섬은 꾸준히 자랐다. 폭파 전 66년 4만5600㎡로 추정되는 밤섬의 면적은 88년 17만 3200㎡, 2013년 27만9500㎡, 2018년 28만4300㎡, 2023년 29만3000㎡로 서서히 늘었다. 밤섬의 면적이 늘어난 이유가 과학적으로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아랫부분인 수중 섬이 그대로 남아 그 위에 모래가 쌓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저자는 “인간의 간섭을 줄이고 회복할 수 있는 여건만 조금 만들어준다면 자연은 인간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회복한다”면서 “파괴만큼 빠를 수는 없지만 절망할 만큼 느리지도 않다”고 말한다.
자연의 놀라운 생명력은 때론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한강 하구의 장항습지는 대표적인 사례다. 장항습지 인근은 원래 신평리라고 불리던 비교적 큰 섬이었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제방 건설과 함께 신평리는 육지가 됐지만 그걸 대신하기라도 하듯 강 중앙에 새로운 섬이 생겼다. 대부분 경작지로 이용되던 새로운 섬은 홍수와 퇴적, 90년대 일산신도시 개발로 대규모 모래 준설이 이뤄지면서 사라졌다. 하지만 유속이 느려진 강변 쪽에 퇴적지가 생겨나고 버드나무가 자라기 시작하면서 습지로 발전했다. 멸종위기 야생동물 9종을 포함해 427종의 야생 생물이 서식하는 장항습지는 2021년 국내 24번째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다. 장항습지의 사례는 자칫 인간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 “옛 신평리나 이후 생긴 섬은 사라졌지만 장항습지가 생기지 않았나. 나쁘지 않은 결과 아닌가”라고 말이다. 저자는 이를 경계한다. “강에 인위적인 변형을 가하면 강은 새로운 형태로 적응하거나 변화한다. 변형에 변형을 거듭하면 원래의 모습은 사라진다. 자연적으로 이뤄진다면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겠지만 인위적인 변형이라면 달리 생각해야 한다.”
⊙ 세·줄·평★ ★ ★
·한강 기적은 한강의 상실을 의미한다
·다시 한강에 배 띄우고, 물놀이 할 수 있을까
·원래의 상태로 복원시키겠다는 의지의 문제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