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미국 개입하면 미군기지 때린다”… 확전 우려 고조

입력 2025-06-19 02:02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18일(현지시간) 테헤란에서 대국민 TV 연설을 하고 있다. 하메네이는 “미국 대통령이 용납 못할 발언으로 이란 국민에게 굴복을 요구했다”며 “이란 국민은 강요된 전쟁과 강요된 평화에 굳건히 맞서겠다.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과 무력충돌을 벌이고 있는 이란이 미국의 개입에 대비해 중동 내 미군기지 타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미 당국자들의 관측이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사살할 가능성까지 거론한 상황에서 이란이 미군기지를 공격하면 확전이 불가피하다. 36년간 이어진 하메네이의 신정일치 체제가 존폐의 기로에 놓였다.

뉴욕타임스(NYT)는 17일(현지시간) 복수의 미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이란이 미국의 개입 시 중동 내 미군기지를 타격하기 위해 미사일과 군사장비들을 마련해 놓은 것으로 파악됐다”며 “확전 우려가 고조됨에 따라 중동 전역의 미군기지가 고도의 경계태세로 전환됐다”고 보도했다. 중동에서 미군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요르단 등에 주둔하고 있다.

이란 정부 관계자 2명은 NYT에 “이스라엘과의 충돌에 미국이 개입하면 이라크 내 미군기지가 첫 표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 당국자들은 미국이 이란 수도 테헤란 인근 포르도 핵시설을 폭격하면 친이란 ‘저항의 축’ 세력 중 하나인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에서 선박 공격을 시작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친이란 이라크 민병대가 미군기지를 공격해 지상전을 벌일 가능성도 거론된다. 해외 주둔 기지나 군용 선박이 공격받는다면 미국은 이를 적대 행위로 간주하고 반격에 나서게 된다. 이스라엘이 하메네이 체제 전복을 공공연하게 언급하는 상황에서 이란이 미군기지를 타격하면 미국·이스라엘과의 전면전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한 건물 지하주차장에 17일(현지시간) 시민들이 모여 이란 미사일 공습경보가 해제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하메네이는 1989년 집권 후 36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왕정을 철폐하고 공화정을 도입했지만 대통령 위의 실권자로 이슬람 성직자를 최고지도자로 둔다. 초대 최고지도자로 10년간 집권한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1989년 6월 사망하자 권력을 물려받은 하메네이는 이란의 신정통치를 완성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하메네이는 최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측근들을 대거 잃으면서 고립된 상태라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하메네이가 주재하는 회의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익명의 소식통 5명은 로이터에 “하메네이가 군사·안보 관련 측근들의 사망으로 참모 공백이 커지면서 고립됐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지난 13일 이란에 대한 공습을 개시하면서 하메네이의 최측근인 호세인 살라미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총사령관을 포함한 군 수뇌부를 제거했다.

이란의 반격 능력이 급격하게 저하된 정황도 나타났다. 이스라엘에 매일 100발에 가깝게 날아들던 이란의 미사일이 17일에는 30기 미만으로 급감했다. 무력충돌 엿새째인 18일 이스라엘은 테헤란 등에 대규모 공습을 이어갔다. 이스라엘군은 “50대가 넘는 공군 전투기가 몇 시간에 걸쳐 테헤란의 원심분리기 생산시설 등을 공습했다”고 밝혔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