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패닉바잉’ 다스리기

입력 2025-06-19 00:34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용기도 없다.’ 최근 재밌게 읽은 소설 ‘리디머’에서 만난 인상 깊은 문구다. 작품에는 지독한 두려움과 공포에서 상상 이상의 용기를 끄집어내는 남자가 나온다. 두려움과 공포는 용기의 원천이자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2018년 한국에 출간된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의 소설에서 마주하게 된다. 밤에는 형사소설에서 등장인물의 두려움을 실감하고, 낮에는 부동산시장을 다룬 취재기자의 보고와 기사에서 수요자들의 공포를 읽는다. 전혀 연결되지 않는 두 아이템이지만 ‘두려움’과 ‘공포’를 밤낮으로 훑고 있노라니 아무래도 그 어두운 심리를 곱씹게 된다.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두려움과 공포를 딛고 일어서려는 건 생존 의지인 것일까, 그러기 위해 모종의 용기를 내는 것인가, 그렇게 용감히 맞서는 게 합리적인 판단일까.

부동산시장에서 감지되는 두려움은 이런 식으로 몸집을 불린다. ‘집값이 더 오르면 어쩌지. 그래서 사고 싶은 집을 놓치면 어떡하나. 내가 살 집은 정녕 없는 것일까. 남들은 다 가진 서울 아파트를 나만(?) 갖지 못하면 어쩌지. 지금이 가장 쌀 때 아닌가. 인생은 타이밍인데 허망하게 흘려보내는 건 아닐까. 이대로 있어도 괜찮은 건가.’

두려움에 두려움을 더하면 감정은 치솟게 마련이다. 가속도가 붙은 두려움은 빠르게 공포로 자라난다. 공포를 몰아내기 위해 용기를 내고 싶게 만든다. 두려움이 용기를 싹틔운다. ‘패닉바잉’은 이런 사고 과정을 거친 끝에 이뤄지곤 한다. 가진 모든 것을 쥐어짜고 영혼까지 끌어모은 뒤 감당하기에 벅찬 지경의 대출을 일으켜서라도 “일단 사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개개인에게는 용감한 결단이기도 하다. 패닉바잉이 하나둘 모이고 쌓이면 대유행으로 번지는 건 시간문제다. 두려움과 공포는 전염성이 높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두려움도 유동성도 넘쳐나던 2020년대 초반, 우리는 모두 경험했다. 코로나바이러스 못지않게 전방위로 번졌던 부동산시장의 패닉바잉 열풍을 말이다.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두려움을 자극하는 숫자들’이 쏟아지고 있다. 대선 직전인 지난 2일 기준 서울 25개 모든 자치구의 아파트값이 올랐다. 주간 서울 집값 상승률은 40주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지난 9일 기준). 한국부동산원 주간아파트가격동향에 따르면 강남4구(서초·강남·송파·강동구)인 서울 동남권 매매수급지수가 3년10개월여 만에 고점을 경신했다(9일 기준). 사려는 사람이 몰리면서 매도자 우위 시장이 확연해졌다. 한강벨트의 급등은 연쇄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서울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과 금관구(금천·관악·구로구)에서도 큰 폭의 상승세가 나타난다. 서울만 들썩이는 게 아니다. 경기도 과천 등 수도권까지 흔들리고 있다. 패닉바잉을 고려하게 만드는 흐름이 큰 물결을 만드는 모양새다.

당장 뾰족한 수를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탄핵당한 윤석열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권이 교체됐지만 달라진 건 아직 없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보름가량 지났을뿐더러 새로운 부동산 정책을 뚝딱 만들어내 초고속으로 적용할 수도 없다. 묘안을 내지 못한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패닉바잉은 생존을 위한 용기일까, 불필요한 상실감에서 비롯된 비합리적인 선택일까. 실마리를 어디에서 찾으면 좋을까. 잔뜩 빚을 내서라도 집부터 사고 봐야겠다는 공포심리를 잠재우는 데서 출발하는 것도 방법이다. 실체 없는 공포가 시장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두려움에 잠식당하지 말라는 믿을 만한 시그널이 나오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문수정 산업2부장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