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의 은혜와 승리가 영원한 나라.’ 우리 집 7남매의 이름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우리 부부가 아닌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주신 이름입니다. 형제가 둘이었던 남편은 “둘이면 됐지 셋은 안 된다”고 했지만, 삼 남매 중 막내였던 저는 “최소한 셋은 돼야 한다”고 우겨서 주현 예현 수현 이렇게 ‘주예수’ 삼 남매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넷째가 태어나니 세 아이 때와는 다른 4차원의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육아에 고충은 있었으나 새 아기가 얼마나 예쁜지 남편은 밤새 자기 팔에 안겨 자는 아이를 내려놓지 못해 회사에 지각할 정도였습니다.
셋째조차 반대했던 남편은 ‘이렇게 넷째가 예쁜데 다섯째가 태어나면 얼마나 예쁠까’하며 생각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저 역시도 ‘어떻게 이렇게 사랑스러운 생명이 우리를 통해 세상에 나올 수 있나’ 새삼 아이의 사랑스러움을 느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할 수 있는 가장 크고 위대한 일이 하나님의 생명 창조사역에 동참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 위대한 선물을 더 받기를 원하게 됐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은 다섯째를 주셨습니다.
그 뒤 여섯째 일곱째가 왔을 땐 저의 건강도 가정 상황도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여섯째를 가졌을 때 사람들은 “노후 대책도 생각해야지 낳기만 하면 어떡하냐”고 했고 일곱째 땐 축하보다 “대책이 있냐”는 질문을 먼저 받기도 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답은 “노후 대책은커녕 출산대책도 없다. 대책은 주신 분이 갖고 계신다”였습니다.
막내를 낳고 6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하나님께선 우리가 상상도 못 할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중학생이 돼 자기 방을 소원했던 큰딸은 꿈에도 그리던 방을 선물 받고는 “엄마, 제가 동생들이 많아서 이런 복을 받는 거 같아요”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섯째가 태어난 후부터 큰 아이들은 마치 부모의 마음으로 동생을 돌보고 사춘기 때도 동생들 재롱을 보느라 항상 거실에 모여앉아 집엔 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성인이 된 큰 아이들은 지금도 외출하고 돌아오면 어린 동생 방으로 달려가 사랑의 퇴근 도장을 찍습니다. 사람들은 때로 “힘들지 않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내려갈수록 커지고 그 사랑이 다시 우리에게 배가 되어 돌아올 때, 자격 없는 우리 부부에게 이런 큰 기쁨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속담이 있지만 하나님은 가지 많은 나무에 얼마나 많은 열매가 맺어지는지 또 그 열매들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을 풍성하게 섬기며 행복한 나눔의 삶을 누리며 살게 하시는지 보여주십니다.
김상수 김미영 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