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6관왕 석권은 최근 한국 공연계를 뒤흔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 대학로 소극장에서 초연한 작품이 미국 공연계 최고 권위를 가진 토니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극본상, 음악상, 무대 디자인상, 연출상, 남우주연상 등 주요 부문을 휩쓸며 최다 수상작이 됐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은 K뮤지컬의 성과이자 K컬처의 새로운 이정표라며 앞다퉈 의미를 부여했다. 뮤지컬은 라이브가 특징인 공연예술의 특성상 영상매체 기반의 대중음악, 영화, 드라마에 비해 확장성이 낮은 만큼 ‘어쩌면 해피엔딩’의 성과는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실제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의 황동혁 감독이 최근 시즌3 제작보고회에서 “깜짝 놀랐다. 미국 대중문화의 4대 상 가운데 오스카와 에미는 받았으니까 이제 남은 건 그래미와 토니라고 생각했다. 그래미는 BTS가 받을 가능성이 있으니 토니상이 가장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고 언급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황 감독의 “우리도 모르는 사이 한국의 창작 뮤지컬이 브로드웨이에 진출해 엄청난 평가를 받고 있어 기쁘다”는 발언에 눈길이 갔다. 왜냐하면 ‘어쩌면 해피엔딩’은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것이 아니라 한국과 미국에서 투트랙으로 개발됐다는 점에서 맞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2014년 한국의 우란문화재단이 창작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2012년 초연)에 참여했던 작가 박천휴와 작곡가 윌 애런슨의 차기작을 지원하면서 시작됐다. 2015년에는 문화재단에서 낭독공연과 트라이아웃(시범공연)이 진행됐다. 처음부터 미국 공연을 목표로 영어 대본 작업도 했던 두 창작자는 이듬해 뉴욕에서 쇼케이스를 가졌다. 문화재단 지원으로 진행된 쇼케이스에서 유명 프로듀서 제프리 리처즈와 만나 브로드웨이 진출 계약을 맺었다.
이후 브로드웨이 공연 제작이 지지부진한 사이 한국에서는 2016년 본공연 초연을 시작으로 지난해 5연까지 이뤄졌다. 지난해 11월 마침내 브로드웨이에서 ‘어쩌면 해피엔딩’이 개막했는데, 박천휴 작가도 언급했듯 한국 내 인기가 도움이 됐음은 분명하다. 미국 프로덕션은 한국 프로덕션과 흐름은 같지만, 출연자를 늘리고 음악을 일부 바꾸는 등 차이가 있다. 게다가 아쉽게도 크레딧 타이틀에 국내 흥행을 주도한 제작사는 물론이고 작품 개발에 기여한 우란문화재단의 이름조차 들어가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브로드웨이에 올라간 ‘어쩌면 해피엔딩’을 엄밀한 의미의 K뮤지컬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뮤지컬계는 박천휴가 한국인인 것 그리고 두 창작자가 미국에 거주해도 한국을 활동 근거지로 성장한 것으로부터 K뮤지컬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현재 국내 뮤지컬계는 대체로 K뮤지컬의 정의나 범위를 넓게 보는 입장이다. 지난해 국내 제작사 오디컴퍼니의 신춘수 프로듀서가 브로드웨이에서 제작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를 K뮤지컬에 포함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신 프로듀서가 미국 동명 소설을 현지 창작진과 함께 무대화한 이 작품의 경우 한국인이 작품의 IP(지적재산권)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K뮤지컬의 정의나 범위가 애매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무래도 한국 뮤지컬산업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이기 때문이다. 다만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일본, 중국까지 포함해 뮤지컬을 공동 제작·투자·유통하는 협력 생태계 ‘원 아시아 마켓’을 현실화한 주역이 됐다. 하지만 이제 아시아를 넘어 영미권 등 전 세계로 눈을 돌린다면 계약이나 제도에 대한 부분을 세밀하게 다듬어야 한다.
장지영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