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택권 목사의 지성을 그리스도에게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력 2025-06-19 00:30

만일 인류에게 성경이 없다면 어떤 세상이 돼 있을까. 빛이 없는 어둠의 세상이 아닐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종종 의인화해서 표현한다. 성경이 말하고 예언하고 행동한다는 표현은 어떤 뜻일까.

성경에 기록된 많은 인물의 이야기는 나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모두 아담의 후손들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본성’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이다.(시 51:5)

구약 인물 중 훌륭한 성군 다윗의 생애를 살펴보자. 그는 양을 치는 목자, 시를 쓰고 음악을 즐긴 시인, 용맹한 군인, 이스라엘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시다. 그러나 지은 죄들도 크다. 그는 나라가 안정되자 주님 뜻을 외면하고 전쟁에 출전할 청년 인구조사를 자의적으로 실행했다. 이 일은 사탄이 이스라엘을 괴롭히려고 일어난 일이며, 사탄이 다윗의 마음속에 인구조사 하고픈 욕심을 불어넣은 사건인데 하나님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백성에게 벌을 내리셨다. 이처럼 지도자의 교만은 백성을 고통받게 한다. 다윗이 부하 우리아 장군의 아내 밧세바와 저지른 죄악은 과히 충격적이다.(삼하 11:12)

당시 백성은 암몬과 전쟁 중이었다. 다윗은 궁궐에서 낮잠을 자다 깨, 옥상을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광경을 보고 욕심의 죄가 잉태됐다.(약 1:15) 그는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의 신분을 알아보게 했고 그 여인과 잠을 잤다. 그런데 밧세바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된 다윗은 우리아 장군을 궁으로 불렀다. 우리아 장군에게 집에 가서 쉬라고 명했지만 집에 가지 않자 다윗은 그와 함께 먹고 마셨다. 우리아는 취했지만 집으로 가지 않고 왕궁 신하들과 함께 문밖에서 잠을 잤다. 이튿날 아침, 다윗은 편지를 한 통 써서 우리아에게 그 편지를 전쟁터 사령관 요압에게 전하라고 했다. 그 편지 내용은 “우리아를 싸움이 가장 치열한 곳으로 보내라. 그런 다음에 우리아만 혼자 남겨두고 물러나라. 우리아를 싸움터에서 죽게 하라”였다. 자기를 죽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손수 들고 상관에게 전한 충직한 부하는 앞장서서 싸우다 전사했다.

요압은 전령을 보내 싸움터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다윗에게 보고했는데 혹시 아군의 피해 상황을 듣고 다윗왕이 화를 내거든 적군이 높은 성 위에서 쏜 화살에 우리 군인과 왕의 신복 몇 사람이 죽었다고 아뢰고 ‘우리아도 죽었다’고 보고하라고 일렀다. 전령은 그대로 보고했다. 이 보고를 듣자 다윗은 꾸중하지 않았다. 오히려 칭찬하는 형편이 된 셈이었다. 이런 다윗은 얼마나 간교하며 위선적인가. 악한 일을 꾸밀 때는 언제나 또 다른 조력자가 있기 마련이다. 요압 장군처럼.

오늘날 한국 현실을 보는 것 같다. 이 사건에 대해 다윗의 행위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했다(삼하 11:27)고 성경은 기록한다. 이러한 죄를 지은 다윗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선 어째서 그를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행 13:22)고 하셨을까.

첫째 다윗은 자기 죄를 확실히 깨닫고 뼈를 깎는 고백을 한다. 또 “저를 몹시 꾸짖으셔도 주의 판단이 옳습니다”고 죄를 토설한다. 그 믿음의 뿌리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절대 믿음이다. 둘째 많은 죄를 지었으나 덮어 두지 않고 주님께 숨김없이 털어놓았으며, 그의 회개는 진실하고 거짓이 없었다. 셋째 그는 하나님의 용서를 절대로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죄의 거처가 되는 마음을 다스려 주시며 새롭게 해달라고 매달리는 “계속된 회개의 삶”이었다. 그는 또 용서받은 기쁨과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재활용의 삶(시 51:12~13)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주님의 용서도 당연시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도 베푸신 용서나 그로 인해 누리는 축복도 거두지 않으셨다. 그 결과 다윗은 죄로 인한 고통 중에도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기쁨을 누리며 살았다.

웨이크신학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