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원의 메디컬 인사이드] 美 아기 살린 치료, 한국선 안 되는 현실

입력 2025-06-19 00:38

얼마 전 미국의 생후 10개월 희귀병 아기가 첨단 유전자 치료를 통해 건강을 되찾았다는 외신이 전해졌다. 아기는 130만명 중 1명꼴로 발생하는 ‘CPS1 결핍증’을 갖고 태어나 뇌 손상과 사망 위험이 매우 높았다고 한다. 환아의 절반 이상이 영아기에 목숨을 잃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대학과 병원 공동 연구진이 생사기로의 이 아기에게 세계 최초로 원인 유전자 교정(편집) 기술을 써서 병을 고쳤다는 희소식이었다.

아기를 살린 건 2020년 노벨상을 받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로 DNA를 잘라내고 붙이는 혁신적 치료법이다. 이번엔 DNA를 구성하는 염기를 화학적으로 바꾸는 방식이 활용됐다. 연구팀은 아기의 유전자 염기 서열을 정밀분석하고 그에 맞는 교정 도구, 즉 유전자 가위를 설계한 뒤 이를 특수 운반체에 담아 몸 안에 주입했다. 유전자 가위는 정확히 간세포로 이동해 잘못된 염기 서열을 고치고 그렇게 수정된 간세포가 CPS1 효소를 다시 만들어냄으로써 아기는 정상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유전물질을 체내로 직접 전달하는 이른바 ‘생체 내(IN-VIVO) 치료’ 방식이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에선 이런 형태의 유전자 치료제 개발이 활성화돼 있다. 2010년대 초부터 관련 법·제도를 정비해 임상연구와 상용화를 위한 임상시험 지원에 나섰다. 미국은 10종, 유럽은 7종, 일본은 4종의 생체 내 방식의 유전자 치료제를 승인했다. 국내에도 3종이 허가돼 있지만 모두 미국에서 개발된 제품이다.

유전자·세포 치료는 희귀난치질환의 근본 치료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선진국들은 미래 전략산업으로 키우는 추세다. 우리나라도 정부 출연기관, 병원, 제약기업 등이 개발에 나서고 있으나 법적 제약으로 임상연구부터 한계가 존재한다. 현행 첨단재생바이오법은 ‘생체 외(EX-VIVO) 방식’의 유전자 치료만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체 외 방식은 몸 밖으로 세포를 꺼내 조작한 뒤 재주입하는 것으로 시간과 비용이 더 많이 든다. 간, 눈, 뇌처럼 세포를 꺼내기 힘든 장기는 접근 자체가 어렵다. 2021~2025년 2월 첨단재생의료 임상연구 승인 과제 174개 중 유전자 치료 분야는 1개뿐이다.

특히 선천성 망막병 같은 소아 희귀안과질환에 생체 내 방식의 유전자 치료는 필수적인데, 환아와 부모들은 치료 기회조차 얻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선천성 망막질환의 경우 수술 치료는 임시방편일 뿐 결국 실명하거나 안구를 적출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그래서 더더욱 미국 희귀병 아기 사례가 부러울 수밖에 없다. 더구나 국내 연구진이 선천성 망막병 아이들에게 적용 가능한 진일보한 생체 내 방식의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미 확보했지만 법적 한계와 고가의 비용 때문에 수년째 임상연구·시험을 진행하지 못해 안타까움을 더한다. 최근 환아 부모들이 방송에 나와 “아이들의 눈을 지켜 달라”고 호소하는 모습은 처절했다. 환아 가족들이 국회에 청원한 안건의 국민 동의는 5만명을 넘었다.

다행히 정치권이 부응해 생체 내 방식의 유전자 치료가 가능하도록 한 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국가 차원의 유전자·세포치료제 연구개발산업화(R&BD)센터를 구축해 임상연구와 산업화까지 연속 지원이 이뤄지도록 하는 방안도 담겼다. 법안의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일각에서 유전자 치료 범위 확대에 따른 기술 오남용 우려가 제기되는데, 다양한 규제 방안을 고민해 반영하면 될 것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라는 속담이 있듯이, 불확실한 위험을 염려해 이대로 계속 간다면 미래 첨단산업 경쟁에서 더 뒤처지고 희귀난치질환자들의 희망고문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지금이야말로 기술을 법·제도가 뒤따르지 못하는 상황을 바로잡아야 할 때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