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우려되는 미 극우의 ‘한국 정부 때리기’

입력 2025-06-19 00:34

‘대선에 중국 입김’ 유포 등
새 정부 ‘친중·친북 색칠하기’

문제는 트럼프가 귀 기울이고
NSC 약체화로 더 영향력 커져
‘실용외교’ 까다로운 검증 예고

동맹 저해 않는 메시지 관리
미국의 안보비용 감소 협조 등
한국의 적극적 자세도 필요

로라 루머가 누구인지 아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 그렇지만 미국에서는 꽤나 유명 인사다. 32세의 유대계 여성인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창하는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의 핵심 인물 중 하나다. 트럼프의 ‘비선 실세’로 통한다.

엑스(옛 트위터)에서 170만 팔로워를 거느린 극우 인플루언서인 그는 최근 한국 관련 게시글로 파장을 일으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된 지난 3일(현지시간) 올린 ‘공산주의자들이 한국을 장악하고 대선에서 승리했다. 끔찍하다’는 내용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대통령 책사였던 스티브 배넌은 ‘한국 대선은 부정선거였고 한국 민주당의 배후에는 중국 공산당이 있다’고 주장하는 패널들과 여러 차례 대담을 진행했다.

문제는 이 극우 선동가들의 얘기를 ‘헛소리’라고 무시하고 혀만 찰게 아니라는 점이다. 백악관과 다른 정부 부처가 이들에게 휘둘리는 징후가 뚜렷하다. 백악관은 이 대통령 당선 관련 논평에서 “한국은 공정한 선거를 치렀다”면서도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을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우방국 대선 결과에 대해 ‘중국의 영향력 우려’라는 문구를 넣은 것은 매우 이례적일 뿐 아니라 무례한 것이다. 극우 선동가들의 ‘핵심 논지’가 백악관 논평에 그대로 반영됐다고 봐야 한다. 또한 백악관 대변인이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 대선 관련 반응이 있느냐는 기자 질문에 “찾아주겠다”며 서류를 뒤적이다가 “없네”라고 답한 것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미 국무부든 백악관이든 우방국의 주요 선거 결과는 대변인이 빼놓지 않고 챙기는 사안이다. 축하 코멘트도 관례적으로 정해져 있다.

극우 선동가 중에서도 특히 트럼프에 대한 루머의 영향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4월 초 루머가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와 만나고 하루 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고위 관계자 6명이 쫓겨났고, 몇 주 뒤에는 마이크 왈츠 국가안보보좌관까지 결국 교체됐다. 루머는 이들 NSC 간부들이 MAGA 운동과 트럼프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고 한다. 루머가 촉발한 ‘숙청’ 이후 NSC는 어느 행정부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트럼프는 왈츠의 후임조차 따로 임명하지 않았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국가안보보좌관을 겸하고 있다. NSC의 약체화는 트럼프가 국제 현안 처리에서 자신의 ‘육감’에 더욱 의존하고 루머 같은 극우 선동가들의 입김에 더 쉽게 흔들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 정부가 백악관과 소통할 통로가 훨씬 좁아졌을 가능성도 다분하다. 보직에서 쫓겨난 알렉스 웡 부보좌관은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도 친분이 있는 ‘북한통’이다.

이런 상황은 이 대통령이 천명한 ‘한·미동맹을 중심에 놓는 실용외교’의 진정성과 지속성을 트럼프와 주변 인물들이 매우 까다로운 잣대로 잴 가능성을 시사한다.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에 관여하고 있는 한 인사는 “이런 가운데 북한에 대한 내재적 접근법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진 이종석 박사의 국정원장 임명은 미국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했다.

워싱턴 일각과 트럼프 주변 인물들의 왜곡된 시각에 우리가 신경 쓸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주력 산업의 앞날이 걸린 관세 협상, 중국에 대한 수출 통제, 주한미군 감축 등 국익에 심대한 영향을 줄 사안이 줄줄이 양국 간 협의를 기다리고 있다.

민감하고 중요한 시기에 워싱턴의 분위기를 경시해서는 안 된다. ‘오해’ 받지 않도록 대통령의 외교안보 메시지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그 시작일 것이다. 국력에 걸맞게, 보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국익을 판단하는 적극적인 사고도 할 만하다. 해외 주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안보 비용 절감을 추구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안보 정책에 협조할 것은 기꺼이 협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미 합동 군사훈련과 미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줄이는 제안을 트럼프에게 할 수 있다. 전시작전권을 한국군 주도로 이양하는 과정을 더욱 빨리 하는 것도 제의할 만하다. 이는 북한에 대한 군사적 대응에 관한 한 한·미동맹의 주도권을 한국이 쥔다는 의미가 있다. 한국의 주권을 향상시킨다는 점에서 바람직할 뿐 아니라 미국에는 대중국 견제에 집중할 여력을 주는 효과가 있다.

배병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