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쪽에 자리한 안성시는 다양한 매력을 품은 도시다.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이지만 자연환경과 역사적인 풍경도 빼어나다. 여기에 우리 민족의 ‘흥’을 느낄 수 있는 예술문화도시다. 산성과 호수 주변을 거닐며 사색과 사유의 시간을 갖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안성시 동쪽에 ‘일죽면’ ‘죽산면’ ‘삼죽면’이 있다. 이들은 고려시대 죽주현에서 분화한 지명이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며 ‘죽일면’ ‘죽이면’ ‘죽삼면’이 생겼다. 어감이 험악해 글자의 앞뒤를 바꿔 ‘일죽면’ ‘이죽면’ ‘삼죽면’으로 바꿨지만 여전히 어색했다. 이죽면은 다시 죽산면이 됐다.
죽산면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근 사진 명소로 떠오르는 죽주산성이 있다. 산성을 처음 축조한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여러 기록에 따르면 6세기 중반 신라가 북쪽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축성하기 시작했고,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며 꾸준히 보강됐다. 내성(1125m), 중성(1322m), 외성(602m)의 삼중성이어서 적은 병사로 많은 적을 막을 수 있는 구조다. 높이 2.5m 정도인 성벽이 웅장하다.
주차장에서 조금만 걸으면 죽주산성 동문터에 닿는다. 사각형 문을 들어서면 산자락에 둘러싸인 타원형의 성터가 모습을 드러낸다. 위쪽에 송문주 장군을 기리는 충의사가 있다. 장군은 고려 고종 23년(1236) 몽골의 3차 침입 때 죽주 방호별감을 지낸 인물이다. 고려사절요의 기록에 따르면 몽골군이 산성을 에워싸고 보름간 온갖 방법으로 공격했지만, 끝끝내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사용하던 병기를 모두 불사르고 떠났다고 한다.
조선 후기 문신이자 정치인 채제공이 쓴 ‘송장군묘비명’에 일화가 전해진다. 몽골군이 산성을 둘러싸고 물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전술을 쓰자 송 장군이 손님을 접대한다며 연못의 잉어를 잡아 적에게 보냈다고 한다. 소용없다는 전술적 조롱이었다. 실제 발굴조사 결과 성안에서 신라와 조선시대의 집수 시설 각 6기와 2기가 발견됐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에도 변이중·황진 장군의 부대가 이곳에서 승리를 거두는 등 역사적 고비마다 역할을 톡톡히 해낸 성이다.
동문에서부터 성곽을 따라 좌우로 산책로가 이어진다. 짧은 구간에서 옛 성곽의 멋을 만끽하기에는 동쪽으로 이어진 오른쪽 성곽길이 효율적이다. 푸릇푸릇한 들풀이 깔린 길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북벽 포루가 있던 자리다. 바깥으로 살짝 돌출된 지형에 포루의 일부가 남아 있고, 그 옆에 오동나무 한 그루가 홀로 서 있다. SNS 사진명소다.
이곳은 예나 지금이나 서울로 통하는 교통요지다. 성곽길 이정표에 ‘영남길’이라는 팻말이 대변해 준다. 조선시대 동래에서 한양까지 이어지는 영남대로의 일부라는 표식이다. 현재 죽주산성 가까운 곳으로 중부고속도로를 비롯해 진천에서 용인으로 이어지는 17번 국도, 안성에서 장호원으로 연결되는 38번 국도가 교차한다. 사방팔방으로 4차선 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다. 북포루에서 서문터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 넉넉잡아 1시간가량 걸린다. 서문터부터는 죽산면과 삼죽면 일대 들판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죽산면·삼죽면과 맞닿아 있는 안성의 남쪽 금광면에 안성의 ‘핫플’로 떠오른 금광호수하늘전망대가 있다. 누구나 편안히 걸을 수 있는 산책로 코스와 곳곳에 마련된 휴식 공간, 금광호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수석정과 전망대, 대규모 공영주차장 등을 고루 갖추고 있어 풍경 감상과 함께 가벼운 트레킹도 즐길 수 있다.
주차장에서 청록뜰 금광호수 조형물을 지나 호수 둘레길을 따라 전망대로 향한다. 안성 출신의 청록파 시인 박두진을 기리기 위한 이 길의 이름은 ‘박두진 문학길’이다. 소나무가 우거진 울창한 숲과 고요한 호수가 어우러지는 감성적인 문학길을 따라 약 10분 걸으면 하늘전망대에 도착한다.
원통형 전망대는 높이 약 25m다. 나선형 경사로를 따라 정상에 서면 파란 하늘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고공에서 금광호수와 금북정맥 일대 풍경을 360도 파노라마로 감상하며 특별한 사진도 남길 수 있다. 전망대 정상 한가운데 ‘상모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 풍물단의 상모를 형상화한 것으로 주변의 산 및 호수 풍경과 조화를 이룬다.
남사당패 꼭두쇠로 바우덕이가 있다. 본명은 김암덕(金岩德). 1848년쯤 태어난ㅆ다. 윤치덕이라는 꼭두쇠가 병든 홀아비로부터 다섯 살짜리 딸을 넘겨받아 남사당으로 키웠다고 한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노래는 물론 외줄타기 등 기예에도 천부적 재능을 발휘했다.
바우덕이가 열다섯 살 때 윤치덕이 죽자 바우덕이는 남사당패 100여 명의 단원을 거느리는 최초의 여성 꼭두쇠로 추대받는다. 얼마 후 경복궁 복원 공사장에서 흥선대원군이 지켜보는 가운데 인부들을 격려하는 풍물놀이판을 벌여 정3품 벼슬아치에게 주는 옥관자를 하사받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바우덕이는 21세에 폐병에 걸려 꽃다운 나이인 23세에 생을 마쳤다.
여행메모
일죽IC와 5분 거리 죽주산성
토·일 오후 2시 남사당공연
일죽IC와 5분 거리 죽주산성
토·일 오후 2시 남사당공연
안성 죽주산성은 중부고속도로 일죽나들목에서 5분 거리에 있다. 서울로 향하는 일대 상행선은 상습 정체가 시작되는 곳이다. 산성 바로 아래 무료주차장과 화장실 등이 마련돼 있다. 산성 입장도 무료다. 성곽 바로 앞에도 주차할 수 있는 공터가 있다.
금광호수하늘전망대는 ‘금북정맥 탐방안내소’를 찾아가면 된다. 주변 무료주차장은 휴일이면 빈자리 찾기가 쉽지 않다. 전망대 운영 시간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다.
호수가 많은 안성에서는 민물 어죽과 매운탕 요리가 발달했다. 찰지고 윤기 흐르는 안성 쌀로 지은 쌀밥 정식과 육질이 부드럽고 감칠맛이 뛰어난 안성농협의 안성한우 또한 별미다. 그 한우로 맛있게 고아 낸 안성우탕, 안성 국밥은 지역 향토 음식으로 인기다.
매주 토·일요일 오후 2시 안성남사당공연장에서 열리는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 풍물단의 공연도 빼놓을 수 없다.
안성=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