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선의 신조선가(새로 건조하는 선박 가격)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글로벌 해운사들이 친환경 선박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는 영향이 크다. 국내 조선업계는 연달아 대규모 계약을 따내며 반년 만에 수주액 11조원을 넘겼다.
17일 영국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2만2000∼2만4000TEU급 컨테이너 운반선의 신조선가는 2억7350만 달러(약 3723억원)를 기록했다. 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를 의미한다. 이는 17만4000㎥급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의 신조선가인 2억5500만 달러를 웃도는 수치다.
컨테이너선 가격이 LNG운반선을 넘어선 건 업계에서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여겨진다. LNG운반선은 LNG를 영하 163도에서 안정적으로 저장·운반해야 하는 등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통상 컨테이너선보다 ‘몸값’이 높았다.
업계에선 친환경 규제 강화를 주요 배경으로 꼽는다. 세계해사기구(IMO)는 2030년 선박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8년 배출량의 80% 수준으로 줄인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를 달성하지 못한 선박에 대해서는 초과 배출량만큼 벌금이 매겨지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규제 시행 시기가 다가오면서 선박 교체에 나서는 회사가 늘고 있다”며 “수요 증가가 가격 상승에 영향을 준 것”이라고 말했다. 메탄올·LNG 이중연료 추진 등 고효율 친환경 기술이 적용되며 선박 단가가 올라간 점도 선박 가격 상승의 한 이유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조선업 견제에 나선 것도 일부 영향을 줬다. 지난 4월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올 하반기부터 중국산 선박을 운영하는 해운사에 입항 수수료를 부과하고 이를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저가 공세로 컨테이너선 시장을 장악해 온 중국 조선사에 추가로 발주하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 진 것이다.
HD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한화오션 국내 조선 3사는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이들 3사는 올 상반기에만 컨테이너선 54척을 수주했다. 이는 지난해 전체 컨테이너선 수주량인 38척의 1.5배 수준이다. 수주액도 84억2000만 달러(약 11조4800억원)로 지난해 수주액(65억8000만 달러)을 넘어섰다.
다만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확보된 자금을 바탕으로 선대 확장 및 노후선 교체, 친환경 흐름 등으로 컨테이너선 수주가 늘었지만, 이런 흐름이 계속 이어질 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