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칼럼] 공짜 점심 대신 국민 손에 투자 통장 쥐어주자

입력 2025-06-18 00:50

소비 진작 위한 국민위로금은
한끼 공짜 점심 정도로는 제격

기본소득 제도로 고정될 경우
재정 부실 등 부작용 불보듯

AI 펀드에 국민 투자 통장 등
참여형 수익 모델 등 개발해
모든 국민이 과실 공유케 해야

이재명 대통령의 오랜 꿈이 실현되고 있다. 성남시장 시절부터 시작된 지역 화폐 실험이 새 정부의 핵심 국가 정책으로 부활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2차 추가경정예산에 담아 15만~50만원을 지역 화폐 형태로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지급 방식과 범위를 놓고 ‘보편 지급이냐 선별 지급이냐’는 논의가 있지만, 본질은 그 이면에 있다.

이 현금 살포가 계엄사태 위로금 성격의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향후 기본소득으로 업그레이드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6·3 대선 유세에서 “우리나라는 공짜로 주면 안 된다는 희한한 생각을 하고 있다”며 기본소득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물론 침체한 소비 진작 처방으로 일시적 현금 지급은 마중물로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 마중물이 기본소득이라는 항구적 제도로 고정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산 형성보다는 소비형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데다 증세가 없으면 정부 재정만 거덜 나는 구조로, 지속 가능성 유무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이런 점에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이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기고한 ‘리글로벌라이제이션(Re-globalization)’ 구상은 주목할 만하다. 핑크는 미국이 겪고 있는 경제 불평등 심화와 중산층 붕괴가 무제한적 자본 이동과 규제 부재 속에서 대기업과 금융 엘리트에게만 수익이 집중된 구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이제는 그 혜택이 중산층과 일반 국민에게 공정하게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그가 제시한 대안이 바로 리글로벌라이제이션이다. 이 모델의 핵심은 단순하다. 자본은 세계로 자유롭게 흐르되, 그 결실은 국내 시민들이 공유하도록 금융시스템을 재설계하면 된다는 것이다.

핑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전쟁 및 리쇼어링(해외 공장의 본국 회귀) 전략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그는 트럼프식 보호주의가 세계화의 실질적 흐름을 오판한 어설픈 접근이라며, 이미 자본과 기술, 공급망이 전 세계적으로 얽혀 비가역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물리적으로 공장을 되돌리는 것은 막대한 비용과 갈등만 초래하고 실효성도 없다고 지적했다.

핑크는 금융 시스템 재설계를 통한 ‘금융 민주화’의 사례로 일본의 신 개인저축계좌(NISA·니사)를 소개한다. 니사는 개인의 장기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만든 제도로, 연간 360만 엔까지 주식이나 상장지수펀드(ETF) 등에 투자해 얻는 수익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모든 국민이 시장 주체로 자산을 축적할 수 있도록 만든 금융 인프라다. 실제로 니사 가입자가 2500만 명을 돌파하며 투자 인식의 대중화와 자산 형성 구조에 큰 전환을 가져오고 있다.

미국도 이에 착안해 ‘베이비 본드(Baby Bonds)’ 제도를 검토 중이다. 모든 아이에게 출생 시 정부가 투자계좌를 열어주고 성인이 될 때 ‘자본을 가진 경제 주체’로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빈곤을 ‘소득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자산을 형성할 기회를 얻지 못한 상태’로 보는 미국식 경제철학에 근거한 정책이다. 한국의 지역 화폐가 ‘한 번 쓰고 끝나는 돈’이라면, 핑크가 말하는 구조는 ‘한 번 투자하면 불어나는 자산’으로 국민을 국가 경제의 공동 주주로 여긴다.

그래서 이 대통령이 3대 강국을 외치며 추진 중인 AI 산업 투자 역시 이 구상과 정합적이다. 그는 “AI에 100조원을 투자해야 한다”며 정부가 종잣돈을 조성하고 민간 투자를 유도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전 국민이 소액 투자자로 참여할 수 있도록 ‘디지털 투자 계좌’를 도입하면 어떨까. 정부는 초기 투자금을 엔젤 투자처럼 매칭해주고, 국민 누구나 계좌를 통해 국가 전략 산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한다. 일정 수익률을 넘기면 일부 수익은 개인에게, 일부는 공공복지 기금에 환류되도록 하는 방식도 가능할 것이다.

과거 중화학공업, 섬유, 반도체 산업의 성장이 소수 재벌·자본가에게만 부와 기회를 집중시켰던 구조적 폐해를 이번에는 되돌릴 기회다. 산업의 열매가 국민 개개인 자산으로 쌓여가는 참여형 수익 모델이 될 수도 있다. 이 대통령의 호텔 경제학에도 이 같은 선순환형 자산 형성 정책이 가미돼야 한다고 본다. “공짜는 없다”는 희한한 말은 10여 년 전 그리스 스페인 등 남유럽이 겪은 부채 위기처럼 역사가 되풀이해온 진실이다.

이동훈 논설위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