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엔 학사 경고도 받았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노력한 끝에 대표적 대기업에 입사했다. 회사에선 핵심이라는 인사팀에서 10년 정도 밤낮없이 일했다. 하지만 30대 중반을 맞은 어느 날 영적으로 피폐해진 자신의 모습을 봤다. 후회 없이 살아보자는 마음에 다시 창업의 길에 뛰어들었다. 12년간 12개의 창업 아이템에 도전해 지금의 기업을 정착시켰다. 위크루트의 조강민(47) 대표 이야기다.
위크루트는 인사(HR) 분야에 IT 기술을 접목해 효과적인 인재 검증, 리더십 역량 개발 서비스를 지원하는 회사다. 2013년 설립돼 2021년 경기도 일자리 우수기업에 선정됐다. 최근 3년 사이 매출도 세 배 이상 성장하는 등 업계 내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조 대표는 “인사팀에서 일하면서 잦은 변화 속에서도 누가 살아남아 임원이 되는지를 지켜봤고, 결국 삶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대학 시절 교수님께서 심어주신 ‘콜링’(calling·선교적 소명)이 떠오르며 창업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경북 포항의 한동대 경영경제학부를 졸업한 조 대표를 최근 학교 캠퍼스에서 만났다. 96학번 졸업생인 그는 창학 30주년 기념식 참석을 위해 학교를 찾았다고 했다. 그에게 콜링을 준 이는 한동대 부총장을 지낸 고 박을용(1938~2004) 교수다. 학창시절 박 교수 밑에서 1년간 지도를 받았다는 조 대표는 “교수님을 보며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고, 미국 하버드대 출신으로 유엔에서 일하실 정도로 명망이 있으면서도 늘 검소한 삶을 사는 모습에서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이어 “교수실에 놓인 전화조차 사적인 일에는 절대 쓰지 않고, 세계의 빈곤 퇴치 문제에 큰 관심을 두고 퇴직금 1억원도 기부하셨던 거로 기억한다. 물질에 삶의 가치를 두지 않고, 후학 양성에 애쓰신 삶이 내게 많은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그 영향력이 이끄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당시 박 교수가 아프리카 선교를 함께 해보자고 제안했을 때 도망치듯 대기업을 선택한 것에 대한 부채감이 있었다고 했다. 사회로 나와서도 신앙인이라기보단 그저 교회 출석만 하는 종교인에 가까웠고, 창업한 회사 CEO로 성장하면서부터는 점점 자신의 능력만 의지하는 등 교만해졌었다고 고백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직원들과의 관계도 안 좋아졌다.
“제힘으로만 세상을 살아가려 했던 것 같아요. 내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안 된다는 걸, 제 능력의 한계를 마주했습니다. 늘 마음 한편에는 영적인 공허함이 가득했고, 우울증까지 겹치며 한계에 다다랐죠.”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지나며 우울증은 한층 더 심해졌다. 방황하던 그를 다시 붙잡아준 건 당시 다니던 대학원 지도교수였다. 조 대표는 “온누리교회 집사님이셨던 교수님께서 큐티를 한번 해보라고 권유하셨다”면서 “구약 속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40년 이야기와 하나님 주신 만나에 관한 부분을 읽으며 저의 교만함과 마주했고, 나 역시 40년의 광야 길을 걷고 있었구나 싶어지며 정으로 가슴을 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 무렵 고아와 과부를 도우라는 성경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그 길로 무작정 집 근처 교회에서 운영 중인 지역아동센터를 찾았다. 3년 넘게 토요일마다 도시락을 배달하며 봉사했다.
“주판 튕기지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보자고 다짐했습니다. 점점 제 삶을 하나님이 운행하고 계신다는 관점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섭리를 깨닫게 되며 내 생각만 의지했던 모습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바짝 엎드려 순종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직원과의 관계도 회복됐죠.”
조 대표가 가방에서 꺼내 보여 준 그의 큐티 책엔 그의 묵상 메모로 빼곡했다. 그는 매일 아침 큐티로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다고 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정체성을 정립할 수 있었다. 그는 “학창시절 기도하며 눈물을 흘리는 주변 친구들이 이해가 안 갔던 저였다”며 “당시에는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걸, 그 사랑을 세상에 흘려보내야 한다는 걸 잘 몰랐던 거 같았다”고 고백했다.
조 대표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들이 청년 시절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라는 정체성을 명확히 정립할 수 있길 바란다며 조언을 건넸다. 그는 “사람을 수단이자 도구로만 보고 직무에 사람을 끼워 맞춰 뽑게 되면, 언젠간 공동체에 문제가 생기더라”며 “직무가 바뀌더라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제대로 아는, 정체성이 바로 선 인재라야 어떤 상황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꾸준함을 유지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조 대표가 현재 관심을 두는 건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구현하는 기독교적 가치를 비즈니스 현장에 녹여내는 일이다. 회사 재정 일부를 미자립교회와 해외 선교사 후원, 사회 기부에 흘려보내는 것도 같은 이유다.
조 대표는 “색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빛이 되거나 어둠이 될 수 있듯 각자 내면에 담긴 하나님의 빛이 잘 조화를 이룰 때 좋은 공동체가 되는 것 같다”며 “영적인 공허함, 경쟁과 비교의 삶에서 벗어나 상대방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게 되는 기업을 꿈꾼다”고 강조했다.
포항=글·사진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