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여성의 알바 생활] 건물주 언니, 명품백 엄마

입력 2025-06-21 00:33

의류 포장 공장으로 알바를 나간 후 기술이 많이 늘었다. 봄이 다가올 무렵 인력 알선 업체는 포장 공장들이 모여 있는 집적단지로 나를 보냈다. 처음 간 공장은 창고가 4개나 있는 규모가 큰 곳이었다. 아침에 출근을 하니 알바 10명쯤이 모여 있었다.

그중 한 언니가 처음 보는 얼굴이라며 커피가 든 종이컵을 건넸다. 목에는 금목걸이를 하고 귀에 금귀걸이를 끼고 있었다. 인사하며 커피잔을 받았다. 점심때 공장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식판에 밥과 반찬을 얹고 혼자 먹을 각오로 구석 자리로 향하는데 금목걸이 언니가 불렀다. 함께 작업을 했던 알바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언니는 빈자리를 가리키며 여기서 먹으라고 권했다. 자리에 앉자 단지 내 공장들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알려줬다. 너무 고마웠다. 알바 언니들은 집안 얘기 따위는 하지 않았다.

오후에 작업장에서 일하다 쉬는 시간이었다. 금목걸이 언니가 친정 가족들을 데리고 해외여행 간 이야기를 했다. 언니가 돈을 다 냈단다. 동남아, 일본 오사카 이런 얘기를 하는데 다른 언니들이 자리를 떴다. 흥미로워서 맞장구를 치며 계속 들었다.

나중에 물었다. 돈이 많이 드는데 어떻게 언니가 다 냈느냐고. 언니는 다른 이들 눈치를 살피더니 “나 건물 한 채 있잖아”라고 내 귀에 속삭였다. 건물주 언니였다. 그럼 편하게 쉬지 왜 힘든 일 나왔냐고 묻자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우울하단다. 공장 일이 운동도 되고 돈도 벌어서 좋다고 웃었다. 퇴근할 때 보니 언니가 하얀색 최신 외제차에 올라탔다. 나는 친절한 건물주 언니가 좋았다.

초여름에는 단지 밖에 있는 의류 포장 공장에 갔다. 창고가 3개 있는 중소 규모였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나 말고 30대 언니가 한 명 더 와 있었다. 반장은 우리 둘에게 조금 떨어져 있는 작은 창고에서 일하라고 지시했다

창고에 있는 의류들을 정리하고 포장하는 일이었다. 반장은 지시를 끝내고 금방 가버렸다. 일을 시작하자 우리가 손발도 마음도 잘 맞는다는 걸 알았다. 휴대전화 음악을 틀어놓고 수다를 떨며 일했다. 30대 언니는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고 아이 셋이 있다고 했다.

오늘은 쉬는 날이라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가고 자기는 알바를 나왔다고 했다. 힘들 텐데 쉬지 왜 알바를 나왔느냐고 묻자 아이셋 엄마가 대답했다. 가지고 싶은 명품백이 있는데 돈을 모으러 나왔다고. 남편의 월급과 병원에서 버는 돈은 생활비로 다 써서 그 돈으로 명품백을 살 수는 없다고. 하지만 자기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둔 명품백을 자기 손으로 사고 싶다고.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고. 아이 셋을 키우며 병원에 출근하는 엄마가 매일 얼마나 아등바등할지 눈앞에 그려졌다. 명품백은 현실에서 숨을 작은 구멍 같은 것이리라. 그 마음이 애틋하고 고마워 박수를 쳐줬다.

알바를 다니다 여러 사람을 만났다. 공장에 나온 이유가 다양했다. 사실 대부분은 집안 경제에 도움이 되고자 나온다. 그러나 열심히 살고자 하는 의지는 똑같았다.

김로운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