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습관 오래되면 성품 된다

입력 2025-06-18 00:35

한 학기를 끝내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많은 학생이 첫 수업 때 앉았던 자리를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정해준 자리도 아닌데 앞줄에 앉는 학생은 늘 앞줄에 앉고 뒷줄에 앉는 학생은 매번 뒷줄에 앉는다. 익숙한 것을 편안해하는 심리 때문일 것이다.

낯선 환경에서 한 번 선택한 자리에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고 그 자리는 일종의 루틴이 된다. 익숙한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스트레스를 줄이고 자기 일관성을 지키는 심리적 전략이 된다. 그리하여 새로운 기회 앞에서도 익숙한 경험을 굳게 지키며, 바꾸는 불편함보다 반복된 익숙함을 선택한다.

습관은 같은 상황에서 반복된 행동이 일상화된 것이다.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선택했을지라도 같은 행동이 반복돼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은 삶의 일부가 된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일,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일, 늦은 밤에 야식거리를 찾는 일,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일, 책상을 항상 정돈하는 일 등이 모두 습관이다.

연암 박지원은 “습관이 오래되면 성품이 된다”고 말한다. 반복되는 행동과 태도가 그 사람의 인격이 된다는 의미다. 공자는 “성품은 서로 비슷하나 습관이 서로 달라지게 한다(性相近也 習相遠也)”고 했다. 환경과 경험의 차이에 따라 만들어지는 각자의 습관이 다양한 성품을 만든다는 뜻이다. 행동은 습관을 만들고, 습관은 성품으로 굳어진다.

어떤 이는 나쁜 습관을 지적하면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며 합리화하거나 책임을 회피한다. 하지만 연암의 말에 따르면 ‘이런 사람’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습관이 빚어낸 결과물일 뿐이다. 성격이 정해진 채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하는 행동들이 쌓여 한 개인의 성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한 개인이 진리라고 믿는 것은 오랫동안 반복되어 굳어진 습관과 경험의 결과물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습관은 내가 만드는 것이지만 결국엔 습관이 나를 만든다. 한 번의 의지적 선택으로 시작된 행동이 반복되면서 자동화되면 마침내 습관의 포로가 된다. 습관의 포로가 되면 이를 고치거나 바꾸기는 참 어렵다. 익숙해져 버려서 바꾸는 일이 영 불편하고 껄끄럽다.

나쁜 습관은 변화의 가능성을 철저히 막고, 익숙한 것에만 안주하려는 습관은 성장과 발전을 가로막는다. 스마트폰 중독이나 게임 중독은 만성피로 증후군을 일으키고, 미루는 습관은 시간을 의미 없이 낭비하게 한다.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은 진실한 인간관계를 차단하고, 부정적인 말을 습관처럼 하면 신뢰를 깨뜨려 나를 고립시킨다.

반면 좋은 습관은 삶을 단단하게 만든다. 매일 규칙적으로 자고 일어나는 습관, 운동하는 습관,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 감사와 배려의 말을 아끼지 않는 습관 등은 하루하루를 더 건강하게 만들고 영혼을 맑게 만든다. 좋은 습관을 기르는 것은 좋은 삶을 만들어가는 확실한 방법이다.

좋은 습관과 나쁜 습관은 내가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하는 실존적 선택의 문제다. 나쁜 습관을 버리고 좋은 습관을 만들어가는 것은 단순한 자기 계발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존재론적 과업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일이다. 우리는 매 순간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 선택하며, 그 선택이 쌓여 나의 정체성을 만든다. 오늘 하루의 작은 선택이 나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다. 습관의 노예가 되지 말고 습관의 주인이 되는 것이 지혜로운 자의 태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내게 자문해 보자. 지금 나는 어떤 습관을 갖고 있는가. 그 습관들은 나를 어디로 이끌어가고 있는가.

박수밀 고전학자·한양대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