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건축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무렵인 2009년에 학교 50년 역사의 최고 공로자이신 강신명 목사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강 목사는 24년 동안이나 교장과 이사장으로 봉사하시면서 어려운 시기에 학교를 지켜주신 고마운 분이었다. 새문안교회도 24년을 목회하시고, 총회장도 역임하신 교계의 큰 어른이시다.
나는 6억원이 소요되는 강신명홀 건립을 위해 새문안교회 이수영 목사님을 만나 요청했다. 강 목사님을 기념하는 일은 새문안교회가 비용을 도와야 의미가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6억원 헌금을 부탁했다. 이 목사님은 교회의 여러 사정상 어렵기는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니 함께 기도해 보자고 하셨다.
이 목사님은 방법을 연구한 끝에 내게 부흥회를 인도해 줄 것을 제안하셨다. “우리 교회가 봄, 가을로 부흥회를 하는데 문 총장님이 한번 강사로 오세요. 말씀으로 은혜받고 교인들과 친해진 다음에 당회를 열어 결정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그리하여 나는 2007년 봄 새문안교회 부흥회에 강사로 초청을 받아 설교했고 피차에 은혜를 나누는 감동의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교회가 부흥회 강사인 나에게 보낸 안내문 중에는 “아멘 소리를 의도적으로 유발하지 말아 주십시오”라는 부탁의 문구가 있었다. 나는 부흥회 분위기가 매우 경직되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있었다. 한편 새문안교회 교인들은 대학 총장인 내가 설교를 강의하듯 하면 은혜를 못 받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의 설교가 별로 부흥회와는 맞지 않고 재미가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부흥회가 시작되니 새문안교회 같은 교회가 없었다. 은혜의 열기가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은 분위기에서 교인들이 말씀을 사모하며 받아들였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그 부흥회 기간에 ‘아멘’ 소리도 가장 많았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교인들에게나 강사인 나에게나 최고의 부흥회가 됐다.
부흥회가 끝난 후 당회는 3억원의 헌금을 결의했고, 강신명홀 건축이 진행됐다. 나머지 부족한 금액은 강신명 목사를 기억하는 교인 300명에게 100만원씩 헌금을 요청해 충당했다. 그 결과 200석 규모의 강신명홀과 로비에 마련된 사료관이 완성됐다. 강신명 목사의 전기도 출판됐다. 2009년 4월 16일 개교기념식에서는 강 목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순서와 함께 강신명홀 현판식, 전기 발행, 사료관 개관을 축하하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나는 대전신학대에서 이자익 목사를 발견해 세상에 알린 것과 서울장신대에서 강신명 목사를 새롭게 조명해 기념한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사람을 세우고 역사적 인물을 바로 조명해 세상에 알리는 일은 건물을 건축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2010년 4월 15일, 총 150억원이 투입된 약 8377㎡(2534평) 규모의 모든 건축이 완료돼 해성홀 강신명홀 생활관 종합관을 포함한 개교 50주년 기념 건물 전체 준공 감사 예배를 드렸다. 같은 해, 나는 제4대 총장으로 연임됐다.
정리=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