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배터리·조선까지… 한·일 기업 ‘전략적 공존’ 늘었다

입력 2025-06-17 00:11
LG화학과 日노리타케가 개발한 실버 페이스트 제품. LG화학 제공

LG화학이 일본 전자부품소재 회사인 노리타케와 함께 자동차 내 전력 반도체 칩과 기판을 접합하는 고성능 접착제를 공동 개발했다. 최근 통상 환경 변화와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등이 맞물려 자동차와 조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일 기업 간 ‘전략적 공존’을 택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LG화학은 120년 이상의 기술력을 보유한 일본 노리타케 사(社)와 자동차 내 전력 반도체(SiC) 칩과 기판을 접합하는 실버 페이스트 공동 개발에 나선다고 16일 밝혔다. 노리타케는 반도체·자동차 산업에 연마 휠, 전자부품 소재, 열처리 장비(소성로) 등을 공급하는 정밀 세라믹 기업이다. LG화학이 노리타케와의 고성능 접착제 공동 개발에 나선 것은 최근 자동차 전동화, 자율주행 기술 발전으로 고내압, 고전류에 대응할 수 있는 전력 반도체 수요가 급증한 영향이 크다. 기존 납땜(솔더링) 방식으로는 구동 온도가 300도까지 높아질 경우 안정적인 성능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에 LG화학과 노리타케가 공동 개발한 실버 페이스트는 은(Ag) 나노 입자를 포함한 고성능 접착제로, LG화학의 입자 설계 기술과 노리타케의 입자 분산 기술을 접목해 우수한 내열성과 방열 성능을 자랑한다. 장기간 상온 보관이 가능해 운송 및 보관 효율도 향상됐다고 LG화학은 밝혔다. LG화학과 노리타케는 이번 협력을 통해 차세대 제품 선행 개발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양사의 협력 사례는 최근 한국 배터리 기업과 일본 완성차 기업들의 협력 기류와도 맥을 같이 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일본 완성차 업체인 혼다와 미국 오하이오주에 전기차 배터리 합작공장을 짓고 있다. 이 공장은 올 연말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앞서 2023년에도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에서 생산한 배터리를 도요타 미국 공장에 납품하기로 공급 계약을 맺은 바 있다. SK온도 닛산과 미국용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일본 완성차 ‘빅3’가 모두 한국 배터리 업체와 손을 잡았다.

조선·해운업계에서도 양국 간 협력 사례가 나오고 있다. 조선·해운 전문지인 트레이드윈즈에 따르면 세계 6위 컨테이너 선사인 일본 ‘오션 네트워크 익스프레스’는 최근 HD현대중공업에 1만5900TEU급 컨테이너 운반선 8척을 발주했다. 계약 금액만 2조4000억원 가량이다. 현재 양측이 논의 중인 운반석 4척이 추가 발주될 경우 계약 금액은 3조6000억원으로 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말 일본을 방문해 “한·일 반도체 기업 간 생태계를 통합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반도체 분야에서도 양국 기업 간 협력 모델이 나올지 주목된다. 최 회장은 HBM(고대역폭메모리) 제조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장비나 소재 분야에서 강점을 가진 일본 기업에 기대를 걸고 싶다는 뜻을 밝혔었다.

이러한 한·일 양국 기업 간 잇따른 훈풍은 수교 60주년이란 정치적 영향도 있지만 동시에 글로벌 통상환경 변화와도 관련이 깊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은 “윤석열정부가 추진했던 한·일관계 개선 움직임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도 ‘연속성을 중시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미국의 고(高)관세 정책, 중국 전기차의 약진 등이 겹치면서 한·일 기업 간 경쟁보다는 협력 모멘텀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