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트럼프인 줄 알았는데… 연방대법관 배럿의 배신?

입력 2025-06-16 18:38

에이미 코니 배럿(53·사진) 미 연방대법원 대법관은 5년 전 취임할 때부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로 여겨졌다. 40여년간 대법원의 진보 진영을 이끌어온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전 대법관이 2020년 사망하자 배럿을 대법관에 지명한 이가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배럿 대법관은 공화당과 미국 우파가 가장 싫어하는 대법관이 됐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주요 소송에서 배럿이 결코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움직이지 않아서다.

뉴욕타임스(NYT)는 15일(현지시간) “배럿은 공화당 대통령이 임명한 역대 대법관 가운데 가장 많은 진보적 판결을 이끌어낸 인물”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가 집권 1기 때 짜뒀던 연방대법원 우경화 시나리오를 최전선에서 막아내는 인물이 바로 배럿이라는 얘기다.

보수 진영을 처음 놀라게 한 사건은 취임 직후 나온 ‘연방 파이프라인’ 소송이었다. 정치권은 물론 대법원 내부에서도 “각 주가 연방정부 재산인 석유 파이프라인을 압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다수 의견에 동의할 것이라고 여겼지만 배럿은 진보 대법관 편에 가담했다.

대법원 내에서 가장 보수적 인물로 꼽히는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이 심혈을 기울였던 공무원의 종교 공표행위 허용 소송에서도 배럿은 진보 진영 편에 서서 반대했다.

다만 그는 연방법의 낙태 권리 명시 판례가 뒤집힐 때는 보수 진영에 가담해 연방이 낙태 권리를 각 주 법률에 강제할 수 없다는 판결을 이끌었다.

NYT 분석에 따르면 배럿이 대법관 취임 이후 진보적 견해에 가담헌 비율이 91%인 반면 보수적 견해에 가담한 비율은 84%였다. 보수 인물이지만 가장 중도적이라는 평판을 받아온 존 로버츠 대법원장조차도 진보 견해 가담 비율이 60%를 넘지 못했다. NYT는 “대법원의 압도적 보수 우위(5대 3) 구도에서 누구도 배럿처럼 소수의견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보수 진영 법률운동가 마이크 데이비스는 “배럿은 ‘법원의 보수혁명’에 동참할 용기가 없다”고 비난했다. 법원의 보수혁명은 트럼프가 1기 때 “향후 50년간 대법원은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대변하게 될 것”이라며 사용한 명칭이다.

NYT는 “이민세관단속국(ICE) 체포 무효 소송, 아이비리그 대학들의 반트럼프 소송, 연방공무원 해고 무효 소송 등이 이어지는 지금 배럿만큼 주목받는 인물은 없다”면서 “트럼프의 마가 행진 지속 여부가 그의 손에 달려 있다”고 평가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