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글로벌 전력산업 주도할 골든타임

입력 2025-06-19 00:34

글로벌 전력수요가 사상 유례없는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7년까지 전 세계 전력소비 증가량이 약 3500TWh(테라와트시)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일본의 연간 전력소비량에 맞먹는 수준이다. 전력수요 증가뿐만 아니라 데이터센터 확산, 무탄소 전원 보급 확대,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이 결합된 차세대 전력망 구축 등이 전력산업을 ‘초슈퍼사이클’로 이끌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전력산업이 세계시장으로 도약할 결정적 기회를 제공한다. 그동안 국내 전력산업은 다른 산업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수단적 역할에 머물렀다. 한전이 값싸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으로 중화학공업, 자동차, 반도체 등 핵심 산업의 글로벌경쟁력 확보에 기여했지만 전력산업 자체의 전략적 가치는 간과됐다. 이제 전력사업 자체가 국가 미래를 이끄는 전략산업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다행히 공기업과 민간기업의 유기적 협력, 일관된 산업기반 조성 노력을 통해 우리나라는 전력설비, 디지털 전력 솔루션, 에너지저장장치(ESS), 가상발전소(VPP)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했다. 특히 한전의 대규모 송배전 인프라 고도화, 기술 표준화 체계 구축, 중소기업 대상 기술이전 등이 산업생태계의 내실화를 이끌었다.

하지만 세계 각국은 기술패권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에 돌입했다. 전력산업 기술이 국가안보와 주권을 좌우하는 핵심 전략자산으로 부상한 상황에서 미국은 첨단기술 보호를 위한 통상정책을 강화하고, 중국은 연구·개발(R&D) 예산을 10% 이상 늘려 기술 자립을 가속화하며, 유럽연합(EU)은 AI법, 탄소중립산업법 등으로 글로벌 기술규범 선점을 시도하고 있다.

우려스러운 점은 최근 국내 기업들의 R&D 투자와 연구인력 채용 전망이 코로나19 시기보다 더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산업 전반의 기술혁신 의욕이 심각하게 위축돼 있음을 보여주는 위험 신호다. 정부의 재정 투입과 함께 수요 기반의 R&D 체계 전환, 기술개발 정책의 컨트롤타워 구축, 세제지원과 금융지원 확대 등 실질적인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또한 한전은 민간기업의 기술사업화 촉진과 기술이전 확대를 통해 전력산업을 이끄는 공기업으로서의 역할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현재 전력산업은 육상경주에 비유하면 곡선주로에 진입한 것으로 대전환기를 맞이했다고 볼 수 있다. 산업구조 대전환기에는 개인, 기업, 국가 등 주자의 선택에 따라 추월, 추격, 추락 등 모든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공기업, 산업계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유기적으로 협력한다면 우리나라 전력산업은 머지않아 경쟁자들을 추월해 세계 전력시장을 이끄는 중심축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 ‘골든타임’이다.

구자균 전기산업진흥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