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란하고 그저 평온한 가정이었다. 오래 소망한 끝에 아이 셋과 함께 제주도에 정착해 살던 5년 차, 날벼락 같은 일이 닥치기 전까진.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둘째 아들이 열흘 넘게 열이 떨어지지 않더니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일상은 한순간에 깨졌다. 목회자 아들로 자라 기독교방송 PD가 될 만큼 신앙심이 깊었던 아이의 아버지마저 기도가 나오지 않았다. 그때 이 가정을 다시 일으켜 세워준 건 주변 사람들이었다. 아이에게 조혈모세포를 공여해준 얼굴도 모르는 30대 중반의 남성은 물론, 남은 아이들을 위해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준 이웃, 기도하며 함께 울어준 직장 동료와 아이 학교 친구들과 교사, 병실에서 동고동락한 환아 가족들과 의료진까지….
가족은 세상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잊지 않았다. 그 사랑을 돌려주기 위해 2024년 5월 공익법인 ㈔초록나무를 세웠다. 만 19세 이하 희귀질환 난치병 어린이와 청소년 가족에게 무상으로 병원 옆 쉼터를 지원하는 법인이다. 이 단체의 설립자이자 3년 차 소아암 환아의 아버지인 김의선(44) 초록나무 대표는 최근 서울 은평구의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어린이 전문병원에서 진료받기 위해 집 떠나 병원 근처 모텔이나 원룸에서 지내야 하는 환아 가족이 마음 편히 쉬어가길 바랐다”고 말했다.
이 카페 유리창 너머로 초록나무의 쉼터 1호가 있는 오피스텔이 보였다. 김 대표 가족은 오피스텔 한 채를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에 위탁 기증해 쉼터로 운영하고 있다. 김 대표는 “5년 전 암으로 돌아가신 장모님의 소유로 돼 있던 것”이라며 “병원 옆 쉼터 지원 사업을 위해 고민하며 기도하던 저에게 아내가 ‘후원을 받기 전에 우리의 것을 먼저 내놓는 게 맞지 않겠냐’고 제안해 주었다”고 했다.
쉼터 2호점은 김 대표 가족이 사는 제주도에 있다. 지난해 12월 제주대병원 옆에 문을 연 제주 쉼터는 치료로 오랫동안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는 환아 가족이 함께 여행하듯 쉬어갈 공간으로 꾸며졌다. 김 대표의 아들과 함께 치료받던 가족 등 매달 4~5가정이 머물다 가고 있다. 김 대표는 “가족 단위 봉사자가 환아 가족이 머물다 간 자리를 정리해주고, 각 영역의 전문가가 재능기부로 아이들에게 그림수업 등 5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화가를 꿈꾸는 한 중학생 소아암 친구가 제주 쉼터에 왔을 때 현직 작가와 그림 수업을 연계해 주었다”며 “그 아이가 큰 나무 아래 쉬고 있는 자신을 그려 우리에게 선물해 주었는데, 몸과 함께 마음이 지쳤을 아이에게 희망이 전해진 것 같아 참 뿌듯했다”고 했다. 1호 쉼터는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2호는 초록나무 홈페이지를 통해 매달 첫날 예약 신청을 받는다.
나무 한 그루가 모여 숲을 이루듯 후원자와 봉사자는 초록나무의 동역자다. 사업가와 목회자 등 이사진 8명도 없어선 안 될 초록나무 식구다. 초록나무는 내년에 서울 경기의 어린이병원 인근에 3호 쉼터를 열 계획을 갖고 있다.
14년간 극동방송에서 일했던 김 대표는 단체 설립을 준비하며 직장을 그만뒀다. 그는 “환아 가족의 사정을 잘 알기에 결심한 일이지만 둘째가 막 회복한 시점에 생업을 내려놓았기에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고 했다. 초록나무 설립에 많은 돕는 손길이 있어도 쉼터 2곳의 관리비와 수업 운영비 등 현실적 문제는 불가피하다. 김 대표는 지난해 11월부터 제주공항에서 새벽과 야간에 수화물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어린이병원 선물 전달 등 서울 일정을 위해 귀경하기 전날도 자정이 다 되도록 일했다고 했다. 그의 손톱 밑엔 까만 기름 자국이 선명했다.
김 대표는 “아픈 아이의 부모가 되면 겪게 되는 마음도, 현장 일을 하면서 맞닥뜨린 어려움도 모두 해보기 전까지 몰랐던 것”이라며 “아들이 병원으로 급히 후송되고, 치료받고, 퇴원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받은 사랑과 은혜에 비하면 지금 나누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다”며 마가복음 4장 31~32절 말씀을 인용했다.
“땅에 심긴 작은 겨자씨 한 알이 큰 가지를 내는 나무로 자라나 생긴 그늘에 새들이 깃들 수 있도록 초록나무 가족들과 힘을 모으고 싶습니다.”
글·사진=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