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전력망 갈아엎는 유럽… 한국 전력기기 업계 잰걸음

입력 2025-06-17 00:10
효성중공업이 2023년 스코틀랜드에 공급한 초고압변압기. 효성중공업 제공

한국 전력기기 업계가 전력망 개편에 나선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유럽은 전력 인프라의 상당 부분이 노후돼 있어 설비 교체 수요가 많고, 재생에너지 확대 기류와 관련된 수요도 급증하는 상황이다. 변압기, 해저케이블,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을 생산·수출하는 한국 기업들의 유럽 매출도 매년 증가하는 중이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유럽 전력망 인프라 가운데 약 40%가 사용된 지 40년 이상 된 것으로 추산했다. 게다가 유럽은 2050년 ‘넷 제로(Net-Zero·탄소중립)’를 목표로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빠르게 늘리는 추세다. 전력망 개편 및 강화 필요성이 부각되는 이유다.

EU 집행위원회는 2050년까지 유럽 전력망을 확충하는 데 최대 2조3000억 달러(약 3145조원)가 필요하다고 봤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 전력망 투자액은 800억 유로(약 126조원)로 2018년 이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최근 스페인·포르투갈에서 발생한 대규모 정전 사태를 겪으며 유럽 각국에서의 전력망 투자 필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국내 전력기기 기업들은 이런 틈새를 파고 들어 유럽 시장 확장에 공을 들이는 중이다. HD현대일렉트릭은 최근 스코틀랜드 시장에서 첫 수주를 따내며 유럽 진출에 속도를 붙였다. HD현대일렉트릭은 현지 전력회사 ‘에스피 에너지 네트웍스’와 400킬로볼트(kV)급 초고압 변압기 4대 공급 계약을 맺었다. HD현대일렉트릭의 지난해 유럽지역 연간 수주 금액은 4억3775만 달러(약 6000억원)로 2020년 이후 연평균 44%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역시 변압기를 생산하는 효성중공업도 지난달 스코틀랜드 송전기업 ‘스코티시 파워’와 850억원 규모의 초고압변압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앞서 국내 전력기기 업체 중 처음으로 독일 송전업체와 공급 계약을 맺기도 했다. 조현준 효성 회장은 당시 “유럽에서의 연속 수주는 기술력과 고객 맞춤형 설루션 전략이 빚어낸 결실”이라고 말했다. 이차전지 업체 삼성SDI는 유럽 최대 상업용 ESS 제조업체인 독일 ‘테스볼트’와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지난 11일 밝혔다.

구본규 LS전선 대표는 지난 4월 미국 버지니아주 체서피크에서 열린 현지 해저케이블 공장 착공식에서 “미국의 해상풍력을 보고 투자를 결정했지만, 현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다른 에너지원을 더 지지하고 있다”며 “첫 몇 년은 미국 외 국제 고객을 중심으로 공급할 계획이다. 초반에는 제품 상당량이 유럽으로 간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은 기술 진입장벽이 높고 보수적인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의 시장”이라며 “품질과 기술력을 중심으로 수주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이어 “연구개발(R&D)과 고객 네트워크를 강화해 유럽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워가겠다”고 덧붙였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