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아빠의 국경일

입력 2025-06-17 03:02

지난 주일 미국서 우리 아이들이 나를 부르는 석 자 이름을 기념해 국기를 게양했다. 그 이름은 바로 ‘아버지’다.

“나는 아버지의 날을 맞아 모든 정부 청사에 성조기를 게양하도록 정부 당국에 요청합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공적으로, 사적으로 표현할 것을 촉구합니다.”

1966년 6월 15일 당시 미국 대통령 린든 B 존슨이 발표한 ‘아버지의 날 선포문’ 중 일부다. 이후 미국은 매년 6월 셋째 주일에 국기를 게양하고 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내가 아버지로 살아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국경일의 주인공이 됐다.

물론 나를 이 영광의 자리에 있게 해 준 이는 다름 아닌 아내와 아이들이다. 아내가 두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들이 나를 아버지라고 불러주기에 나는 오늘도 아버지로 살아간다. 직접적인 공은 아이들에게 있다. 아버지로 불러주는 두 아들에게 나는 어떤 아빠였을까. 이 질문 앞에서 선뜻 내세울 답이 없다.

자비량 선교사로 살던 시절엔 젖먹이인 큰아들을 무려 2년 동안 할머니 품에 맡겼다. 그 후 세월이 흘러 박사 논문을 쓰던 시절, 아내와 아들은 책상에 앉은 내 뒷모습만 보며 지냈다고 한다. 둘째 아이에게만큼은 조금이라도 더 잘해보려고 애썼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지난달 막 대학을 졸업한 둘째 아들이 소속된 대학 라크로스 대표팀에서 졸업생과 그 부모가 함께하는 파티가 있었다. 얼떨결에 손목이 이끌려 무대 중앙에 섰는데 곧 아빠의 춤 실력을 선보여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세상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도저히 춤이라 부를 수 없는 몸짓이었지만 그런 아빠를 보는 아들은 허리가 꺾이도록 웃으며 좋아했다. 다행히 무대는 30초 남짓에 불과했다. 조금만 더 길었다면 청심환이 필요했을 것이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아들이 아빠로 인해 그렇게 웃고 즐거워하니 말이다. 이런 ‘아재 댄스’를 영어권에서는 ‘아빠 춤(dad dancing)’이라 부른다. 아재 개그를 ‘아빠 우스개(dad joke)’라고 하는 것처럼 아저씨다움을 아빠다움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표현이 내게는 몹시 달갑다. 그 문구 하나만으로도 이미 아들과 한층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게 해줘서다. 게다가 나라가 국기까지 게양해 준다니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내 아이들이 나보다 더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다행스러운 통계가 있다. 올해 미국 밀레니얼(1980년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 아빠들이 5년 전보다 주 평균 2.5시간을 더 육아에 할애하고 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4월 30일 밀레니얼 세대 아빠들이 아이를 재우고 책을 읽어주는 등 여러 면에서 자신들의 부모 세대보다 육아에 더 많이 애쓰고 있다고 전했다.

이 사실은 내 마음을 깊이 울린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경험하며 자란 밀레니얼 세대가 정작 자신들이 충분히 누리지 못했던 아빠의 역할을 자녀에게 주고자 애쓴다는 사실은 감동 그 자체다. 나 또한 본받고 싶다.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시 103:13) 이 말씀처럼 살아가길 애쓰는 여러 아버지, 심지어 내 아들뻘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마음 따뜻한 6월을 맞는다.

박성현 (미국 고든콘웰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수석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