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행성 관절염은 대중에게 익숙한 질환이다. 60세 이상 인구의 절반 이상이 관절 연골 마모로 삶의 질 저하를 경험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질환을 진단한 뒤 약물과 물리치료, 주사 요법을 시도했다. 상태가 악화하면 인공관절 수술이란 최종 단계를 밟는 구조였다. 이제는 이 구조에 질문을 던질 시점이 왔다. 왜 관절이 닳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연골이 완전히 손상된 후에야 수술을 고려하는 게 최선일까.
현대의학은 치료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돌아보는 새 시대를 맞고 있다. 그 중심에는 세 가지 핵심 기술이 있다. 인공지능(AI)과 정밀의학, 줄기세포 치료다. 이들 치료가 만들어내는 의료의 흐름은 질병 발생 전 재생과 회복력을 높이는 방향이다.
퇴행성 관절염을 노화의 결과로 보는 건 이제 의학적으로 낡은 관점이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관절염 발생에는 연령 증가 외에도 유전적 요인과 비만, 대사장애, 관절 과사용, 외상, 염증성 사이토카인의 활성화 등의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세계적 의학 학술지인 란셋은 2019년 관절염 특집에서 “퇴행성 관절염은 전신의 대사질환적 요소와 만성 염증 반응이 연골 및 활막의 구조적 변화를 유도한다”고 명시했다. 퇴행성 관절염은 몸 전체 균형과 회복력 문제라는 의미다. 회복력을 높일 수 있다면 관절염 자체의 진행을 억제하거나 되돌릴 가능성이 생긴다.
연골은 혈관이 없는 조직이기에 스스로 재생하기 어렵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줄기세포 치료다. 줄기세포 가운데에서도 자가 골수 유래 중간엽 줄기세포(MSC)는 면역 거부 반응이 없고, 연골세포로 분화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2020년 국제 학술지인 줄기세포중개의학(Stem Cells Translational Medicine)에는 자가 골수 MSC를 이용한 무릎 관절 치료에서 치료군의 80% 이상이 12개월 이내에 통증 감소 및 MRI 상 연골 두께 증가를 보였다는 결과가 실렸다. 2022년 한국에서 진행된 식약처 승인 임상 시험에선 무릎 관절염 환자(KL grade 3) 40명에게 자가 골수 줄기세포 치료를 시행하자 1년 후 통증 완화와 함께 기능적 회복 지표도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향상됐다는 결과가 나왔다.
물론 이 치료는 아직 대중적으로 보편화된 방법은 아니다. 표준 치료로 인정되기 위한 장기적 연구가 더 필요하다.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는 줄기세포 치료가 기존의 천공술이나 제대혈 치료에 비해 더 높은 회복력과 생착률을 보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AI 기술이 결합하면 관절염 치료는 또 다른 차원으로 진입한다. AI는 MRI 영상과 보행 패턴, 염증 지표와 유전자 정보 등 환자의 수많은 데이터를 종합해 질병의 위험도를 조기에 예측할 수 있다. 2023년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연구에 따르면 딥러닝 기반 관절 분석 모델이 방사선 전문의보다 높은 정확도로 병기(病期) 진행(KL grade 1~3) 가능성을 예측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밀의학은 단순히 유전자 검사를 넘어 환자의 체질, 대사 상태, 호르몬, 염증 반응, 생활습관 등 전체 생체 특성을 분석하여 최적의 치료법을 도출하는 방식이다. 줄기세포 치료에 이 개념이 접목되면 각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세포주와 배양 방법, 주입 방식 등을 설계할 수 있다. 최근 유럽에선 일부 재생의학 기업이 AI 기반 줄기세포 품질 평가 시스템을 도입해 세포의 분화 능력, 생존율, 유효성을 예측하고 자동화된 맞춤 치료 설계를 시도하고 있다.
퇴행성 관절염의 미래 치료는 ‘닳으면 갈아 끼우는 방식’에 머물지 않는다. 줄기세포로 조직을 재생하고 AI로 위험을 예측하며 정밀의학으로 각자만의 치료 전략을 세운다면 관절염은 관리와 회복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제 의료는 병을 막연히 기다렸다가 수술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병이 오기도 전에 회복을 설계하는 과학으로 나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삶의 방식과 건강에 대한 철학 자체를 바꾸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선한목자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