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니~임. 안녕~하세요~.”
형광 저지를 입은 염슬찬(30) 선수가 지난 11일 인천국제벨로드롬에서 고재일 목사에게 무심한 듯 인사를 건넸다. 고 목사도 “슬찬아 잘 지냈지”라며 손을 흔들어 답했다.
2023년 항저우 아시안 패러 게임 남자 개인 3000m 체이스 동메달리스트인 염 선수는 이내 자전거에 올라 뙤약볕 아래 트랙으로 들어가 페달링을 시작했다. 인천 장애인사이클연맹 소속인 염 선수는 뇌성마비를 앓고 있지만, 트랙에서만큼은 장애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정말 잘 타죠? 지난해 부상으로 국가대표에서 탈락했는데 올해 다시 선발되기 위해 도전하고 있습니다.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선수예요.” 고 목사는 염 선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연신 칭찬을 쏟아냈다.
목회자와 장애인 사이클이 무슨 관계이길래 그늘도 없는 트랙 옆을 떠나지 못하는 걸까. 고 목사는 최근 인천 장애인사이클연맹 회장이 됐다. 그는 이 일이 자신의 목회라고 소개했다.
고 목사는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는 복음은 생명력이 크지 않다”면서 “세상으로 흘려보낼 때 생명으로 살아나고 복음으로 완성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연일 구슬땀을 흘리는 장애인 사이클 선수들의 바람과 필요를 채워주고 싶다”면서 “항상 귀를 크게 열고 선수들의 목소리를 듣는 게 나의 심방”이라며 웃었다.
장애인들의 스포츠 참여율은 24.9%에 불과하다. 비장애인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장애인 체육은 여전히 참여 장벽이 높고 인식과 시설 부족 등 여러 한계에 놓여 있다. 고 목사가 장애인 선수들과 함께 땀 흘리는 이유도 보이지 않는 장벽을 낮추기 위해서다.
그동안 세상과 복음을 잇기 위해 노력해 온 고 목사의 경험이 인천 장애인사이클연맹 회장이 되는 데 밑거름이 됐다. 고 목사는 20년 동안 세이브존 오렌지재단 대표로 예술과 문화, 제3세계 교육 등 ‘서로 돌봄’의 최전선에서 활동해 왔다. 오렌지재단은 세이브존 아웃렛 백화점이 설립한 선교·사회 공익 단체다.
이처럼 교회 밖 세상을 돌보는 일을 해 오던 고 목사와 유진석 인천 장애인사이클연맹 감독의 만남은 예비된 인연 같았다. 고 목사는 안전한 자전거 문화 정착을 위해 고민하고 있었고, 그런 그를 알게 된 유 감독은 회장직을 권했다. 장애인사이클연맹의 회장은 권한을 누리는 자리가 아닌 낮은 자리에서 돌봄을 실천해야 할 자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유 감독은 “(고 목사를) 곁에서 보니 추진력이 대단하시고 소외된 이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눈에 띄었다”면서 “여건이 대단히 좋지 않은 인천 장애인사이클연맹을 맡아주시면 어떨까 생각하던 중 마침 회장이 공석이 돼 조심스럽게 부탁드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목회자가 회장이 된 만큼 연맹 분위기 쇄신과 함께 교인들이 장애인 체육에 관심을 더 두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도 전했다.
목회자가 장애인 체육회 회장이 된 것은 이례적인 만큼 그 효과에 대한 기대도 크다. 인천 장애인사이클연맹의 살아있는 역사인 강만원 감독은 “지도자들이 개인재산을 털어 훈련해야 할 정도로 열악한 게 장애인 체육”이라면서 “사회와 기업 모두 장애인 체육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가교가 돼 달라”고 당부했다.
장애인 선수 부모의 마음은 특히 간절하다. 염 선수의 아버지 염경훈씨는 “목회자가 장애인 사이클 연맹을 맡았는데 학부모로서는 선수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것 같아 좋은 면이 많다”고 반기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 날로 많아지길 기대하고 있다. 집에서 나오기 힘든 장애인들에게도 스포츠를 통해 큰 희망을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스포츠는 특히 장애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연결고리로 주목받아 온 분야다. 스포츠를 통해 장애인이 세상과의 접점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도 “장애인 스포츠가 세계 1억2000만명 이상의 장애인들에게 통합과 건강, 권리 향상을 이끄는 강력한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장애인 사이클 선수들과 고 목사의 만남은 교회가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통로가 다양하다는 걸 보여준다. 그의 목회가 교회 안이 아니라 선수들의 땀이 배어 있는 트랙 옆에서 피어나는 이유다.
인천 장애인사이클연맹은 ‘달리는 희망’을 만들어가는 공동체가 되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연맹에는 생활 체육인과 선수들이 함께 활동하고 있는데 선수 육성과 함께 장애인 사이클 저변 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책임도 있다.
고 목사의 말이다. “교회의 본질은 돌봄에 있고 이를 통해 모두가 복음 안에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게 목사인 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벽을 허물고 약한 이들을 향해 손을 내미는 자리가 바로 복음의 공동체가 해야 할 사명 아닐까요.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갈 내일을 응원해 주세요.”
인천=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