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무사고 경력의 베테랑 드라이버 남기룡(71)씨는 요즘 될 수 있으면 운전을 피하려고 한다. 최근엔 집안 모임이 있어 남씨가 모는 차로 일가친척을 데려왔는데, 헤어질 땐 “알아서 가라”고 했다. 시력이 떨어지는 게 느껴지며 해가 진 뒤엔 운전대를 잡는 게 부담스러워서다. ‘노인이 교통사고를 냈다’는 기사를 보면 본인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남씨가 말했다. “나이 든 사람들이 운전을 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닙니다. 대부분은 저처럼 사고가 나진 않을까 걱정도 하죠. 그러나 시골엔 대중교통이 많지 않아서 차 없인 생활을 할 수가 없어요. 대신 항상 조심을 해야겠지요. 사고는 당장 내일이라도 날 수 있는 거니까.”
그래서 지난 13일 진행된 ‘HMG 시니어 안전 드라이빙 데이’를 찾았다. 남씨를 포함해 대구 수성구 고산노인복지관 어르신 23명이 운전 교육을 받으러 한국교통안전공단 상주교통안전체험교육센터에 모였다. 상주교육센터의 박승호 교육운영처장은 어르신 교육생들에게 “나이가 들수록 교통사고 발생률이 증가하는 건 세월의 흐름에 따른 순리”라며 “이를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 만든 체험교육 중심의 교육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오전 이론교육을 마친 어르신들은 대형버스를 타고 체험교육장으로 이동했다. 안전벨트의 중요성을 경험하는 걸로 체험교육을 시작했다. 이종순(74·여)씨가 지시에 따라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승용차 뒷좌석에 앉았다. 역시 지시에 따라 안경을 벗고 다리를 모은 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얼굴 앞쪽에 뒀다. 이씨가 탄 차를 운전한 상주교육센터 최창현 교수는 시속 10㎞ 정도로 서행하다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아이고, 세상에!” 이 할머니의 몸이 완전히 앞으로 쏠리는 바람에 앞좌석에 부닥치려는 걸 겨우 두 손으로 막았다. 그다음엔 안전벨트를 매고 같은 상황을 연출했다. 체험을 마친 뒤 채종수(76)씨가 말했다. “시속 10㎞로 달려도 이 정돈데 50㎞로 달리면 아이고야…. 안전벨트가 가슴팍을 꽉 잡아주니까 확실히 다르긴 다르네. 뒷좌석에서도 꼭 안전벨트를 매야겄어.”
버스로 3분 정도 이동하니 ‘안전벨트 전복 시뮬레이터’라는 장치 위에 해치백 차량이 있었다. 어른신들이 올라탔다. 최 교수가 버튼을 누르니 차량이 뒤집어졌다. 운전석에 앉은 남씨는 머리가 차량 천장에 닿은 상태로 운전대를 더 꽉 움켜쥐었다. 어르신들이 내린 뒤 최 교수는 “몸이 떠 있는 상태기 때문에 안전벨트를 풀기 전 몸을 지지할 곳을 먼저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노인 급발진 사고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어서인지 의도치 않은 가속 상황에 대처하는 교육에도 꽤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급발진 상황이 발생하면 브레이크 페달을 양발로 힘껏 밟으세요.” 최 교수가 기아 K5를 타고 직접 시범을 보이며 설명했다. 급발진은 차량 결함이 원인인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운전자가 당황해서 발생한다. ‘브레이크 페달을 양발로 밟으라’는 건 운전자가 당황해 있을 상황이기 때문에 ‘일단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도록’ 하는 취지다. 기어를 N(중립)으로 옮긴 뒤 전자식 주차브레이크를 이용해 멈추는 방법도 소개했다. “당황한 상태에서도 우리가 할 수 있을까요” 한 어르신이 물었다. 배홍근 교수는 “정신이 없는 상황일 수 있지만 이렇게 체험을 해 본 것과 그렇지 않은 건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대답했다.
각 차량에는 현재 시범사업 중인 페달 오조작 방지장치가 장착돼 있었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자 차량 속도가 오히려 줄어들었다. 현장에 있던 한정미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 기획전략팀장은 “어르신들 차량엔 이 장치가 꼭 보급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곡선제동코스에 가자 스프링클러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이 대리석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눈이 살짝 깔려 있는 도로처럼 바닥이 미끄럽다. 시속 40㎞ 정도 속도로 주행하던 어르신이 교수의 설명에 따라 운전대를 꺾자 바퀴가 헛돌았다. 권교선(61)씨는 깜짝 놀라며 “우리 남편이 이렇게 운전했으면 한소리 했을 것”이라고 했다. 최 교수는 “미끄러운 도로에선 시속 5㎞만 빨라져도 차량이 미끄러질 수 있으니 주의하시라”고 당부했다.
지난해 고령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 사망자는 761명에 달한다. 2021년(709명) 이후 매년 증가세다. 박 처장은 “고령운전자는 인지력과 판단력이 저하되고 신체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그러나 농촌에서 자동차는 생계나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수적이다. 고령 운전자를 위한 교통 인프라 개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대차그룹은 고령자 교통사고 증가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2016년부터 한국도로교통공단·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교통안전 베테랑 교실’을 진행하고 있다. ‘시니어 안전 드라이빙 데이’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복지관에서 선정한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를 대상으로 한다. 오는 11월까지 총 20회에 걸쳐 고령 운전자 약 6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상주=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