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란 충돌에 불 붙은 국제유가… 정유·석유화학 ‘한숨’

입력 2025-06-16 00:20
15일 서울 마포구의 한 주유소에 휘발유와 경유 가격 안내문이 걸려있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확전 가능성 고조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국내 유가도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권현구 기자

이스라엘과 이란의 무력 충돌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있다. 원유 생산과 수송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국내 정유·석유화학 업계도 원가 상승과 수요 위축이라는 이중고에 봉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5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3일(현지시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근월물 종가는 전장 대비 7.3% 오른 배럴당 72.98달러에 마감했다. 같은 날 미국 ICE 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선물 근월물 종가도 7.0% 오른 74.23달러를 기록했다.

국내 정유·석유화학 업계는 긴장 속에 유가 추가 상승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집중 공습 타깃에 이란의 주요 에너지 인프라도 들어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란 석유부 당국자는 “이스라엘이 수도 테헤란의 주요 휘발유 저장고를 공격해 연쇄 폭발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란 남부 걸프해역에 있는 사우스파르스 가스전도 공격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석유화학 업계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석유화학 제품의 기초 원료인 나프타는 원유를 정제해 얻는데, 국제 유가 상승은 곧 나프타 가격 인상으로 이어진다. 이미 국내 석유화학 업계는 중국발 공급 과잉과 글로벌 수요 위축으로 불황 국면에 접어든 상태다. 이처럼 수요가 약한 상황에서는 원가 상승분을 판매가격에 반영하기 어려워 마진이 더욱 줄어드는 구조다.

정유업계도 부담이 크다. 유가 상승이 이어질 경우 원유 도입 비용 증가로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고, 수요 위축 시 정제마진까지 떨어질 우려가 있다. 업계 관계자는 “생산시설 파괴가 현실화되면 정유업계도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석유제품 가격이 더 크게 오르거나 수요가 유지된다면 실적 개선 여지도 있다.

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변수는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여부다. 이란 국영방송 이린(IRINN)은 14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를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이 해협은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의 3분의 1을 담당하는 중동의 주요 원유 수송로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하루에 약 2000만 배럴, 글로벌 석유 무역량의 약 3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이진명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이스라엘·이란 간 충돌이 단기간에 해소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며 “당분간 유가 상승 압력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연구원은 “글로벌 원유 공급 차질 영향은 제한적이겠으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부가 가장 핵심”이라며 “실제로 이를 봉쇄한 경우는 아직 없지만,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현실화할 경우 심각한 공급 차질이 야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기관들도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투자은행 JP모건은 “호르무즈 해협이 실제 봉쇄되거나 무력 충돌이 중동 전역으로 확산될 경우 국제 유가는 배럴당 120~13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