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군사퍼레이드 vs 전국선 ‘노 킹스’ 시위… 갈라진 미국

입력 2025-06-15 19:06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멜라니아 여사가 14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육군 창설 250주년 기념 열병식에 참석해 입대 장병 선서를 지켜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육군 창설 250주년이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79번째 생일인 14일(현지시간) 미국 전역에서 ‘노 킹스(No kings)’ 시위가 열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생일에 맞춰 워싱턴DC에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열자 ‘미국에 왕은 없다’를 구호로 트럼프의 권위주의적 통치를 비판하는 시위가 열린 것이다. 미국 주요 언론은 50개주 2000여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이번 시위가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최대 규모라고 전했다.

수도 워싱턴에서는 트럼프가 강경한 시위 대응을 예고했음에도 열병식 시작 전 수백명이 참여한 반트럼프 집회가 열렸다. 시위대는 백악관 근처에서 “트럼프는 집으로 가라” “인류애의 이름으로 우리는 파시스트 미국을 거부한다”고 외쳤다. 일부 시위대는 저항의 의미로 성조기를 거꾸로 들고 있기도 했다.

동부 지역에선 필라델피아와 뉴욕 등 대도시 중심으로 대형 집회가 열렸다. 뉴욕 맨해튼에선 수만명의 시위대가 ‘왕은 없다’ ‘나는 ICE(이민세관단속국) 분쇄를 원한다’ 등의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트럼프를 규탄했다. 배우 수전 서랜던도 참석해 선두에서 행진했다.

ICE의 강경한 이민 단속으로 최근 반트럼프 시위 사태가 촉발된 로스앤젤레스(LA)에서도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시위대는 해병대가 배치된 다운타운 연방 건물 주변에서 ‘해병대는 LA에서 나가라’ ‘반역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트럼프의 사진에 ‘왕이 아닌 범죄자’라고 적은 팻말을 든 시위대도 있었다.

LA처럼 주방위군이 배치된 텍사스주에서도 대형 집회가 개최됐다. 휴스턴 시내에서 열린 시위에는 1만5000여명이 집결했다. 샌프란시스코와 시카고, 애틀랜타 등 거의 모든 대도시에서 노 킹스 시위가 진행됐다. 트럼프의 사저 마러라고가 있는 플로리다주 팜비치에서도 트럼프 반대 시위가 열렸다.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노 킹스’ 집회에서 시위대가 거대한 ‘트럼프 베이비’ 풍선과 함께 행진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노 킹스 집회는 ‘50501(50개주, 50개 집회, 하나의 행동)’과 인디비저블 등 진보단체와 환경·노동단체 등 200개 이상의 단체가 연합해 주최했다. 주최 측은 참가자들에게 비폭력 행동에 집중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에 미 전역에서 집회가 열렸음에도 폭력이나 충돌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미 전역에서 시위가 계속된 가운데 군사 퍼레이드는 워싱턴에서 이날 오후 예정대로 실시됐다. 퍼레이드는 링컨 기념관 근처인 23번가에서 시작해 워싱턴 기념탑 인근 15번가까지 약 1마일 정도 진행됐다. 트럼프는 백악관이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마련된 대형 무대에 부인 멜라니아 여사,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등과 나란히 앉아 열병식을 지켜봤다. 군대를 사열하며 거수경례를 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예포에 맞춰 도착하자 일부 군중은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퍼레이드에선 미국 독립전쟁과 제1·2차 세계대전, 6·25전쟁과 베트남 전쟁 등 과거 주요 전쟁 당시 군복을 입은 미군 6600여명이 걸어서 행진했다. 셔먼 탱크와 에이브럼스 탱크, 스트라이커 장갑차, 브래들리 보병전투차량, 팔라딘 자주포 등 최신 장비도 등장했다. 하늘에는 블랙호크(UH-60)와 아파치(AH-64), 치누크(CH-47) 등 헬리콥터가 비행했고 낙하산 부대가 낙하했다. 국방부는 열병식 비용을 최대 4500만 달러(약 615억원)로 추산했다. CNN은 이번 퍼레이드가 1991년 걸프전 종전 기념 퍼레이드 이후 워싱턴에서 열린 가장 큰 규모의 군사행사라고 전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