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자살예방 시스템은 자살 위험군이 SOS를 쳐야만 작동된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자살 공화국’ 오명을 벗으려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을 선제적으로 발굴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재명 대통령이 높은 자살률을 지적하자 보건복지부는 기존 수동적 방식의 시스템 개선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15일 복지부에 따르면 2004년 시작된 자살예방기본계획은 현재 5차(2023~2027년)까지 시행 중이다. 그러나 앞서 제1~4차 계획상 목표자살률은 매번 달성되지 못했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지난해 ‘자살예방정책 시행 후 자살률 추세 변화’ 논문에서 5차 계획 시행 후 첫 16개월 동안 기존 추세 대비 월평균 100명 이상 초과자살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정책 실효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자살시도자의 자발적 신고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절망에 빠져 있어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특성이 있는데, 국내 자살예방 서비스는 대부분 본인이 직접 신청해야 작동한다”고 말했다.
한 예로 15~34세 청년층 자살시도자에게 연간 100만원의 치료비를 지원하는 사업이 있다. 사후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취지지만 진단서와 응급실 진료비 영수증 등을 구비해 본인 거주지의 자살예방기관(자살예방센터·정신건강복지센터)을 방문해야 한다. 대만의 경우 전담 기관에서 자살시도자를 직접 방문해 도움을 주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고위험군 관리도 마찬가지다. 경찰과 소방관은 자살시도자를 발견하면 본인 동의 없이 자살예방기관에 이름·연락처를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이윤호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안실련) 사무처장은 “기관에서 자살시도자에게 상담이 필요하느냐는 안내문자를 보내는 게 전부”라고 꼬집었다.
지난해부터 ‘109번’으로 일원화된 자살예방 상담전화도 먼저 도움의 손길을 뻗지 않는다. 상담 과정에서 고위험군으로 판단될 경우에만 동의를 구해 경찰 등이 방문한다. 일본에선 민간단체를 적극 활용해 고위험군에게 찾아가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자원봉사자들이 SNS에 게시된 자살 관련 글을 찾아 당사자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소통을 시도한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5일 국무회의와 안전치안점검회의에서 자살률을 언급한 데 이어 지난 10일에도 대책을 주문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기존 정책을 보완·발전해 대통령실 사회수석에게 보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