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개선하는 정치

입력 2025-06-16 00:38

이번 대선에서 ‘호텔경제학’이 이슈였듯 2022년 대선에선 ‘경제는 정치’ 논란이 일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2021년 12월 서울대 경제학부 강연 중 한 발언이 발단이 됐다. “일부에서 이런 오해가 있죠. 경제는 과학이다. 사실은 경제는 정치죠. 마치 통계나 이런 것들이 진리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제가 보는 경제는 진리나 과학이 아니고 정치입니다. 의견입니다. 가치죠.”

유력 대선 후보의 경제철학 정도로 볼 수 있었던 해당 발언은 뒤이은 강의 내용과 맞물리며 도마에 올랐다. 이 대통령은 많이 가진 사람이 더 부담하고 적게 가진 사람이 덜 부담하는 원칙이 작동하지 않는 영역을 금융으로 규정한 후 “어떻게 금융은 가난한 사람이 더 부담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가난할수록 대출 기회가 적어지고, 이자를 더 내는 것이 정의롭지 않다는 설명이었다. 금융의 원천은 신용이고 신용의 원천은 국가 권력, 발권력 그 자체인데 이건 국민 모두의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당시 강연을 두고 ‘경제를 정치에 종속시켰다’ ‘포퓰리즘’ 등의 비판이 잇따랐다. 중앙은행 금리 인하 후 물가·환율 폭등을 부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을 예로 든 비판도 있었다. 1시간이 조금 넘는 강연만으로 한 사람의 생각 전체를 알기 힘들고, 전체 맥락보다 특정 표현에 매몰된 비판이란 항변이 가능하지만 이는 ‘정치인 이재명’에 대한 세간의 우려가 투영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그가 정권을 잡을 경우 경제·외교·법률 같은 영역들이 정치로 환원되고, 특정 이념과 가치를 밀어붙이면서 국가 발전도 멀어질 것이란 우려다. 이번 대선을 앞둔 정치 환경은 그런 우려를 떠올리는 이유가 됐다. 지난해 총선에서 단독으로 175석을 얻고, 범여권 의석까지 합칠 경우 190석에 육박하는 의회의 뒷받침을 받는 정부는 전례를 찾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기간 표방한 중도보수, 취임 일성에 포함한 유연한 실용정부는 이 같은 우려를 어느 정도 덜어낼 만했다. 이제 겨우 첫 발을 뗐지만, 논란이 된 대통령실 인사의 사의를 수용하고 취임 이후 보인 행보들도 이 대통령의 변화에 부합한다.

전례 없는 힘을 가진 정권이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를 복원한다면 국민들은 더 크게 반길 것이다. 그간 정치는 국민들에게 만성 피로의 이유였다. 정확히는 현실을 개선하는 데 관심 없고, 대결에 몰두하는 정치에 지쳤다. 이번 대선이 지난 6개월간의 전례 없는 혼란에 대한 단죄임에도 과반을 넘기지 못한 건 그만큼 양극단에 선 이들이 많았다는 해석이 그래서 설득력 있다. 비록 정치를 두고 한 말은 아니지만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는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말은 한국 정치에도 신랄하게 어울린다. 상대에게는 원칙론을 강요하면서 우리에게 현실론을 항변하는 ‘내로남불’의 다양한 버전들이 그간 상대 진영과의 골을 깊게 만들었다.

이 대통령은 임기를 시작하면서 “통합은 유능의 지표이며 분열은 무능의 결과”라는 인상적인 구절을 남겼다. 정치 분열만 놓고 보자면 그간 한국 정치는 별로 유능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경고음의 빈도가 잦아지고, 강도 역시 세졌다. 경제성장률만 봐도 꾸준히 뒷걸음쳤고, 그 결과 이재명정부는 취임 첫해 0%대 성장률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선 전후 이 대통령이 보여준 변화에 기대를 거는 이들이 많다. 문제는 앞으로다. 최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한은 75주년 기념식에서 인용했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이 참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개선하려면 변해야 하고, 완벽해지려면 자주 변해야 한다.”

김현길 경제부 차장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