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쌀값 문제가 여전히 심상치 않다. 이시바 시게루 내각의 지지도를 떨어뜨려 곤혹스럽게 한다. 이시바 총리는 비장의 카드로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성 장관을 등판시켰다. 이시바 총리는 이달 도쿄도의원, 다음달 참의원 선거도 앞두고 있다. 쌀값을 내리지 못하면 선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런 위기감이 이시바 총리에게 있었던 것이 아닐까.
고이즈미는 취임 직후 지금까지 일반 경쟁입찰로 방출했던 정부 비축미를 수의계약으로 바꿨다. 과거 3차례 입찰로 방출한 비축미 중 95%는 일본농협(JA)에 낙찰됐는데, 매장에 배치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지난 3월에 입찰한 30만t은 2개월 후에야 소매업자에게 배송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고이즈미 장관은 계약 방식부터 바꾼 것이다. 그 결과 지난달 26일 방출된 30만t은 3일 후 인터넷 판매가, 5일 후 매장 판매가 시작됐다.
그러자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이번에 매도한 쌀은 2021·2022년산으로, 5㎏에 2000엔 정도에 판매되고 있다. 에토 다쿠 전 장관 때 방출된 쌀(2023·2024년산)은 5㎏에 3500엔 안팎으로 판매 중이다. 같은 비축미인데 ‘에토쌀’과 ‘고이즈미쌀’이 1000엔 이상 차이가 나게 됐다. 소비자들은 4000~5000엔대의 브랜드쌀과 3000엔대의 과거 비축미, 그리고 2000엔대의 지금 비축미를 슈퍼마켓 진열대에서 동시에 접하게 됐다. 결국 가격이 비싼 과거 비축미 거래를 취소하려는 소매업자가 나올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졌다.
결국 고이즈미는 도매업자가 보유한 쌀을 정부에 반환하고, 그것을 정부 비축미로 재판매하는 ‘재매입 제도’ 도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재매입과 재방출 과정에서 운송비가 늘어 효율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비난과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특히 고이즈미 장관의 비축미 공급 정책은 당의 농림족(농가를 주요 지지기반으로 하는 자민당 의원들)과 JA의 반발을 불러왔다. 저렴한 비축미가 쌀값을 내려 농가의 수입을 축소할 것이라는 걱정과 농림족과 사전에 상의하지 않고 계약 방식을 바꿨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이번 쌀값 소동의 근본 원인은 ‘쌀 부족’이다. 일본의 쌀 생산량이 계속 줄어 2021년부터 수요가 생산량을 웃도는 상황이 시작됐다. 유통이 정체된 것이 문제일 뿐 생산량은 충분하다고 자신했던 농림수산성의 인식이 실제 농정 현실과 달랐던 게 문제였다. 농림수산성의 데이터가 현장과 차이가 있다는 점은 종종 지적된 문제다. 선물·현물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게 하지 않고 정부가 수급 조정을 위해 제공하는 데이터만을 토대로 생산량을 조절한 결과다.
고이즈미 장관은 쌀 재고량이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을 수용했고, 정부의 오산을 인정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농정에 잘못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한 고이즈미 장관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일본 농업의 지병이라고 할 농지 축소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무제한 방출하겠다”는 비축미 반출도 일시적인 정치 퍼포먼스였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취임하자마자 계약 방식을 바꿔 신속히 비축미를 방출함으로써 고이즈미 장관과 이시바 내각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자민당이 다음달 참의원 선거에서 어필할 수 있는 것은 쌀 가격과 미·일 관세 협상 정도다. 모리야마 히로시 자민당 간사장도 참의원 선거가 끝날 때까지는 고이즈미 장관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참의원 선거가 1개월도 남지 않았다. 지금은 만원사례인 ‘고이즈미 극장’이지만, 관객의 열기가 식으면 뛰어난 배우의 인기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정권의 운명도 위태로울 것이다.
이명찬 동북아역사재단 전 명예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