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나는 대전신학대 13대 총장에 연임됐다. 건축을 마치고 소진된 건강을 추스르면서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5년 12월 국회에서 개정사학법이 통과됐다. 이 법의 독소조항 중 하나는, 사립대학 총장은 1회에 한해 중임할 수 있고 그 이상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 법대로 하면 2년 뒤에는 내가 학교를 물러나야 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놓고 기도가 시작됐다.
나는 자리를 위해 사람을 찾아다니거나 정치를 할 줄 몰랐고, 또 그럴 마음도 없었다. 단지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가장 적합한 곳에 저를 사용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만 했다. 지금까지도 하나님의 인도와 은혜로 살았고 여기까지 왔으니, 앞으로의 진로 문제도 하나님이 하실 일이지 내가 노력한다고 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은 참으로 놀라웠다. 내가 다음 거취 문제로 기도를 시작한 지 한 달 뒤인 2006년 1월 말에 갑자기 곽선희 목사님께서 전화해 만나자고 하셨다. 그때 곽 목사님은 서울장신대 이사장이었다. 서울의 모 호텔에서 조찬을 함께 하면서 곽 목사님은 나에게 서울장신대 총장으로 올 것을 제안하셨다. “문 총장, 민경배 총장님이 정년으로 물러나는데 서울장신대 총장으로 오세요.” 후임 총장으로 나를 동문회가 추천하고 자신도 흔쾌히 허락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 서울장신대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누가 이사로 있는지도 몰랐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곽 목사님과 나는 대전에서 건축할 때 건축헌금을 부탁하려고 몇 번 만나 뵌 것이 전부였지 그 이상 친분이 있는 관계는 아니었다. 그런데 총장으로 오라는 청빙 제의는 분명 하나님의 뜻이고 기도의 응답으로 느껴졌다.
나는 목사님께 서울에도 사람이 많은데 왜 나를 오라고 하느냐고 물었다. 곽 목사님은 웃으면서 “문 총장이 대전에서 건축을 잘한다는 소문이 자자한데, 우리 학교도 건축을 잘하는 총장이 필요해요. 와서 집 지으라고 부르는 거야”라고 해 한바탕 웃었다.
나는 대전신학대 총장 임기를 아직 마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당시 이사장인 류철랑 목사님을 만나 이 일에 대해 상의했다. 서울장신대의 총장 제안은 있지만 대전의 임기가 끝나지 않았기에 류 목사님의 의견대로 거취를 정하겠노라고 했다. 류 목사님은 여러 상황을 고려한 후에 “섭섭하지만, 문 총장의 앞길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가라”고 허락했다. 2년 뒤에 대전신학대를 떠나야 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동안 정성을 쏟아부어 세운 학교 건물을 바라보면서 이 학교와 작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그러나 하나님의 학교이니 그다음의 역사도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을 기도했다. 2006년 3월 24일 나는 이임 예배를 드리고 대전신학대의 모든 이사, 동문, 교수, 직원, 학생들과 눈물로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내가 총장으로 부임하던 2006년 봄, 서울장신대의 당면과제는 역시 건축이었다. 또 다른 건축의 과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예배당, 기숙사, 종합관을 포함하는 150억원 공사였다.
정리=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