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할 수밖에 없는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
그마저 타락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마저 타락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앨런 무어의 1987년 저작 ‘왓치맨’(Watchmen·감시자)은 만화 예술의 정점으로 꼽힌다. 미국의 슈퍼히어로물 역사에 획을 그었다. 이제는 트렌드가 돼버린 ‘고뇌하는 히어로’라는 인물상은 그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히어로의 고뇌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의미하며, 왓치맨의 주제 의식을 관통한다. 이야기의 배경은 1980년대 미국. 주인공인 로어셰크는 동료 히어로 코미디언의 죽음을 추적한다. 그리고 옛 동료들을 방문해 누가 의도적으로 히어로를 살해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신적인 초능력을 갖게 된 나머지 인간의 감정을 잃어버린 닥터 맨해튼,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초인 오지만디아스, 은퇴 뒤 과거 시절을 그리워하는 나이트 아울 등이 그 동료들이다.
로어셰크는 나이트 아울과 함께 사건의 실마리를 따라가다 결국 흑막을 확인한다. 오지만디아스는 너무 똑똑한 탓에 인류가 핵전쟁으로 자멸한다는 미래를 예견했다. 그래서 외계인 침공 사건을 꾸며내기로 했다. ‘외부의 적’을 만들어 인류의 단결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유전자 조작으로 괴물을 만든 뒤 이를 뉴욕 한복판에 떨어뜨려 수백만명을 죽일 계획이었다. 히어로 살인 사건은 오지만디아스가 그 계획을 눈치 챈 동료들을 하나씩 제거하며 벌어진 일이었다. 그는 이런 황당한 학살극을 실행할 만한 능력이 있었다.
닥터 맨해튼은 그를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히어로였으나 인간 생명을 구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방관했다. 로어셰크와 나이트 아울은 남극까지 쫓아가 오지만디아스를 막아섰지만 계획은 이미 실행된 뒤였다. 학살극 직후 미국과 소련은 외계 위협에 대응해야 한다며 즉각 평화 협정을 맺었다.
닥터 맨해튼과 나이트 아울 등은 이 사실 앞에 침묵하기로 했다. 혼란을 피하기 위해 타협했다. ‘망가진 원칙주의자’ 로어셰크는 진실을 밝히려 했지만, 이를 막으려는 닥터 맨해튼에 의해 원자 단위로 분해된다. 그는 죽기 전 “오지만디아스의 새로운 유토피아에 시신 한 구 더 생기는 게 뭔 문제겠어! 죽여!”라고 외쳤다.
왓치맨에 등장하는 히어로들은 어딘가 비틀려 있다. 그들의 초인적 능력은 치명적인 결점을 수반한다. 로어셰크는 ‘악’이라고 판단한 인간들을 살해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닥터 맨해튼은 더 이상 인간으로 남을 수 없어 고독함을 느꼈다. 오지만디아스는 종말을 알아버렸고,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백만 단위의 학살을 망설임 없이 실행했다. 우리가 아는 완벽한 히어로, 정의의 사도는 왓치맨에 존재하지 않는다.
“누가 감시자를 감시하는가?(Who watches the watchmen?)” 무어가 왓치맨에서 던지고자 했던 질문이다. 이 구절은 반복적으로 언급되는데, 출처는 고대 로마의 풍자시인 유베날리스다. 아내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 붙인 감시자 또한 아내와 부정을 저지를 수 있다는 냉소적 구절이다. 무어는 여기에 슈퍼히어로라는 메타포를 추가했다. 이제 누구도 감시자의 타락을 막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비유에는 국가 권력의 남용, 폭주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무어의 또 다른 저작인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에도 그 주제 의식은 뚜렷하게 드러난다.
왓치맨을 처음 접했던 십수년 전 ‘타락한 감시자’는 그저 막연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감시받지 않은 감시자가 어떤 행위까지 할 수 있는지 우리 모두 지켜봤다. 권력은 결국 부패할 수밖에 없다. 그걸 가진 인간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역대 6명의 대통령이 내란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탄핵된 대통령도 2명이다.
최근 새로운 권력이 탄생했다. 그 행정 권력은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최대 의석수를 확보한 입법 권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군사 정권 이후 가장 강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런데 올해 초 불붙었던 개헌 논의는 새 정부 출범 뒤 사그라졌다. 전 정부는 거대 야당이라는 견제 세력이라도 있었다. 이제는 누가 감시자를 감시할 것인가.
문동성 사회2부 차장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