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왕 된 K백화점… “고객 경험을 삽니다”

입력 2025-06-16 02:11

글로벌 유통업계의 시선이 서울로 향했다.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이 각각 유치한 국제 유통 콘퍼런스에 전 세계 백화점 업계 리더들이 총출동했다. 침체에 빠진 글로벌 오프라인 유통업계가 K백화점의 진보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두 개의 국제 유통 포럼 ‘IGDS 월드 백화점 서밋(WDSS)’과 ‘국제백화점협회(IADS)’ 정례 콘퍼런스는 각각 서울 중구 롯데호텔과 영등포구 더현대 서울서 열렸다. 한국의 백화점 산업은 디지털·경험·공간이 결합된 차세대 유통 모델로서 본격적인 글로벌 실험대에 올랐다.

롯데, 국내 최초 ‘IGDS 백화점 서밋’ 개최

제16회 IGDS 월드 백화점 서밋(WDSS 2025) 이틀째를 맞은 지난 12일 오전, 롯데호텔 내 행사장엔 각국 유통기업 고위 관계자 300여명이 빼곡히 모였다. 역대 WDSS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국 언어의 번역 리시버를 낀 참석자들은 착석한 채 연사들의 연설에 귀를 기울였다.

롯데백화점과 함께 WDSS 2025를 주관한 IGDS(대륙간백화점협회)는 스위스 취리히 본부를 둔 세계 최대 백화점 네트워크다. 현재 38개국 44개 회원사가 활동 중이다. 2008년 런던을 시작으로 뉴욕, 취리히, 베를린 등 주요 도시에서 서밋을 개최해왔다. 롯데백화점은 1994년 한국 최초로 가입한 이후 국내 대표 회원사로 활약하고 있다.

‘고객을 사로잡는 최고의 방법’을 주제로 11~12일 개최된 올해 서밋에는 아딜 메붑 칸 영국 리버티 백화점 CEO(최고경영자), 패냐 챈들러 미국 노드스트롬 백화점 CEO, 유고 히라마츠 일본 시부야 파르코 총괄 디렉터, 알베르토 트리포디 몽클레르 최고 리테일 책임자 등 세계 유통을 이끄는 20여명의 주요 인사가 연사 및 패널로 나섰다.

총 8개의 세션 중 이날 진행된 ‘K웨이브의 새로운 진화’ 세션은 세계적인 K리테일러들의 도전과 노력을 조망하는 WDSS 2025의 가장 중요한 세션으로 꼽혔다. 정준호 롯데백화점 대표의 연사를 시작으로 김승환 아모레퍼시픽 대표, 홍정우 하고하우스 대표, 이준범 GFFG 대표가 각각 K콘텐츠 기반의 글로벌 확장 전략을 공유했다.

정준호 대표 “보수적 문법 깨고 경험 중심 재설계”

정준호(사진 가운데) 롯데백화점 대표가 지난 1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세계 최대 백화점 미래 전략 포럼 ‘IGDS 월드 백화점 서밋’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이번 행사에는 각국 리테일 기업의 경영진을 비롯한 유통 관계자 300여명이 참석해 미래 경영과 유통 혁신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롯데백화점 제공

‘K웨이브의 새로운 진화’ 세션의 첫 번째 연사자로 참석한 정준호 대표는 백화점 산업이 기존의 전통적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쇼핑몰이 개방성과 편안함으로 젊은 세대를 사로잡는 반면, 백화점은 여전히 보수적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며 “이제는 리테일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제시한 해법은 ‘경험’이다. 그는 “MZ세대의 취향과 감성에 맞춰 팝업스토어, 문화 행사, ESG 연계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다”며 롯데백화점의 크리스마스마켓, 명동페스티벌, 스타일런 등의 체험형 콘텐츠를 소개했다. 지난해 전국 롯데백화점 매장서 열린 팝업스토어의 개수는 무려 340여개에 달한다. 하루에 한 번꼴로 새로운 팝업이 열린 셈이다.

‘체험형 소비’ 전략의 대표 성공 사례로는 잠실점이 꼽힌다. 지난해 서울 송파구 롯데 잠실점에서 열린 ‘포켓몬 팝업스토어’에는 25일간 400만명 이상이 다녀가며 역대급 흥행을 입증했다. 지난해 잠실점 고객 수는 6500만여명으로, 2019년 대비 28% 늘었다. 신세계 강남점에 이어 두 번째로 ‘3조 클럽’에 진입한 이 매장을 2028년까지 국내 최초의 ‘4조 클럽’에 올리겠다는 것이 정 대표의 포부다.

‘VIP 모시기’ 서비스도 강화하고 있다. 정 대표는 오프라인 유통업의 위기에서 백화점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또 다른 전략으로 VIP 서비스 강화를 꼽았다. 롯데백화점의 상위 5%의 고객 매출은 전체 롯데백화점 매출의 62%를 차지한다. 정 대표는 VIP 고객의 중요성을 체감한 만큼 주얼리 페어, 와인 페어링, 골프·예술 연계 프로그램 등 더욱 고도화된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경쟁사인 현대백화점의 ‘더현대 서울’을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정 대표는 “더현대는 전통적 백화점 문법을 과감히 깨고 1층과 6층을 쇼핑몰처럼 구성한 혁신 사례”라 평하며 “롯데 잠실점 리뉴얼은 더현대가 만들어낸 변화에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한 버전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국제백화점협회, 더현대 서울서 콘퍼런스

국제백화점협회(IADS) 소속 주요 백화점 최고경영자(CEO)와 경영진들이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을 방문해 현대백화점의 리테일 모델 혁신 사례를 살펴보고 있다. 현대백화점 제공

지난 10일 현대백화점도 글로벌 유통업계 CEO들의 이목을 끌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위치한 더현대 서울에서 열린 국제백화점협회(IADS) 정례 콘퍼런스에는 미국, 독일, 홍콩, 덴마크 등 9개국 백화점 CEO들이 참석했다. 본격적인 콘퍼런스 개최 전 CEO들은 약 2시간 동안 더현대 서울의 전 층을 직접 둘러보며 공간과 운영 방식을 체험하기도 했다.

IADS는 통상 회원사에서만 콘퍼런스를 열어왔으나 올해 더현대 서울의 성공 사례를 공유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한국 개최를 결정했다. 전 세계적으로 오프라인 유통업의 위상이 약화하고 있는 가운데, IADS 회원국들이 미래형 리테일 모델을 모색하던 중 더현대 서울에 관심이 쏠렸다는 것이 현대백화점의 분석이다.

글로벌 CEO들은 한국 백화점 산업에 주목하는 배경으로 ‘K팝’과 ‘K컬처’의 세계적인 영향력도 꼽았다. 캄심 라우 IADS 회장이자 홍콩 소고백화점 CEO는 “지금은 한국 백화점을 본격적으로 연구할 시기”라며 “한국의 패션, 음식, 문화는 글로벌 유통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한국 백화점 산업이 글로벌 리테일 모델로서 본격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정지영 현대백화점 사장은 “백화점은 쇼핑 공간을 넘어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과 가치를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탈바꿈하고 있다”며 “현대백화점이 제시하는 공간·테크·콘텐츠 중심의 리테일 혁신이 이번 CEO 콘퍼런스를 통해 더욱 확장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