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사진) 한국은행 총재는 12일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은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때를 제외하고 지난 3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라며 “한은은 당분간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총재는 이날 서울 중구 한은에서 열린 창립 제75주년 기념식에서 “앞으로 내수는 점차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미국 관세정책과 무역 협상 향방에 따라 수출 흐름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경기부양책이 시급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총재는 다만 일시적인 경기 부양책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장잠재력의 지속적 하락을 막고 경기 변동에 강건한 경제구조를 구축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며 “급하다고 경기 부양책에만 과도하게 의존하면 사후적으로 큰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경고했다.
이 총재는 이어 “손쉽게 경기를 부양하려고 부동산 과잉 투자를 용인해온 과거 관행을 떨쳐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준금리를 과도하게 낮추면 실물경기 회복보다 수도권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며 “지난 3월 이후 서울 아파트 가격이 연율 기준으로 약 7% 상승했고,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세도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은이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그간 거점도시 육성, 대학 지역별 비례선발제, 퇴직 후 주택연금 활용, 지식서비스산업 전략적 육성 등을 제안했다.
이 총재는 특히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AI)을 보급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금융결제시장은 단순한 속도 경쟁이 아닌 구족 변화와 연결성을 요구하는 새로운 국면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은행, 증권, 보험 등이 하나로 통합되는 시스템을 실현하려면 모든 금융기관이 연결된 공통의 디지털화폐 기반이 필요하며 그 중심에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예금토큰이 자리한다”고 말했다. 현재 한은은 ‘프로젝트 한강’을 통해 기관용 CBDC와 예금토큰에 기반한 디지털화폐 인프라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이 총재는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는 법정화폐의 안정성이 무너지지 않도록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원화 표시 스테이블코인은 핀테크(금융기술) 산업의 혁신에 기여하면서도 법정화폐의 대체 기능이 있다”며 “안정성과 유용성을 갖추는 동시에 외환시장 규제를 우회하지 않도록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 관계 기관과 긴밀히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정하 기자 g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