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빠른 시일 내에 전기차 시대가 도래할 줄 알고 과감한 투자를 계속해 왔다. 그러나 모빌리티 생태계는 예상보다 천천히 전환하고 있고 대부분 업체는 전기차로 수익을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총알’이 떨어진 완성차 업체가 핵심 사업을 다시 내연기관차 중심으로 전환할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포드는 지난해 3열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생산 계획을 철회했다. 당초 목표는 미국 테네시 공장에서 올해부터 생산에 돌입하는 것이었지만 생각보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이 더뎌지면서 없던 일로 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 ‘자동차 전쟁’(Car Wars)에서 포드가 이로 인해 시설투자비 등 19억 달러(약 2조5800억원)의 손실을 냈다고 추정했다. 그러면서 다른 완성차 업체도 전기차 대중화 시점을 잘못 예측한 바람에 막대한 투자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미 주요 글로벌 완성차 업체는 손실을 메우기 위해 전기차 개발에 쏟던 투자를 줄이고 내연기관차·하이브리드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 등 엔진을 장착한 차량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BoA의 자동차 분야 애널리스트 존 머피는 “전기차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현실화하지 않으면서 업계는 큰 조정 국면에 들어섰다. 향후 몇 년간 현금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완성차 업체들이 다시 핵심 사업으로 회귀하고 있다. 제조사들은 전기차 전환 계획을 수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적잖은 완성차 업체가 전기차 생산이나 설비 투자 계획을 유보하는 중이다. 볼보는 2030년까지 전 차종을 전기차로 바꾸겠다는 계획을 지난해 철회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판매 차량의 50%를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로 전환하는 시점을 올해에서 2030년으로 미뤘다. GM은 미국 미시간주 전기 트럭 공장 가동을 미루고 있다. 혼다는 2031년까지 전기차 투자 규모를 기존 10조엔(약 94조4200억원)에서 7조엔(약 66조900억원)으로 대폭 축소하고 캐나다 신규 전기차 공장 건설도 2년 이상 연기했다. 보고서는 “2029년까지 전 세계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전례 없는 혼란을 겪을 것”이라며 “전기차 계획이 수정되면서 엔진 장착 차량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 신차 출시가 전례 없는 수준으로 감소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완성차 업체들이 앞다퉈 내놨던 ‘전기차 전환 중장기 계획’에 대한 수정이 불가피해서다. 시장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가 부담스러운 측면도 신차 감소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향후 4년간 북미에서 출시될 완전변경 모델이 159개에 불과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예측치인 200개보다 20% 이상 낮아졌다. 이 기간 완성차 업체의 평균 신차교체율은 16% 수준이다. 신차교체율이란 전체 라인업 중 완전변경 모델을 내놓는 비율이다. 신차 출시가 줄면 전체 차량 판매도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보고서는 “(4년간 완전변경 모델이) 항상 200개가 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변화는 과거에 본 적이 없었던 것”이라며 현재의 자동차 산업을 “‘성장’과 ‘생존’ 사이에서 전략적으로 재정비하는 시기”라고 진단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