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지도자 간 친서 교환은 경색된 관계를 풀거나 위기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는 외교적 수단으로 종종 활용된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는 양측의 군사적 충돌을 막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70년 11월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이 중국 지도부에 은밀히 전달한 친서는 마오쩌둥의 마음을 움직여 미·중 수교로 이어지게 했다. 2017년 12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는 이듬해 6월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초석 역할을 했다.
친서 외교의 실패 사례도 적지 않다. 케네디 대통령은 북베트남의 지도자 호찌민과 남베트남의 지도자 응오 딘 지엠 등과 각각 친서를 교환했지만 베트남 전쟁의 확산을 막지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 영국과 독일, 러시아의 군주들도 마찬가지였다. 유럽의 갈등 해소를 위해 열심히 친서를 주고 받았지만 역부족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2018~2019년 27차례 친서를 주고받았다. 잦은 친서 교환은 두 사람이 돈독한 사이라는 걸 보여주는 물증처럼 여겨졌다. 정상 간 친서는 공개되지 않는 게 관례인데, 두 사람의 친서는 이례적으로 전문이 공개됐다. 초기의 친서들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관계 개선의 의지를 드러내면서 ‘세기의 브로맨스’를 낳는 듯했다. 그러나 두 차례 회담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자 특히 김 위원장의 친서는 노골적인 불만과 경고로 가득했다. 한국 정부의 지나친 관심과 개입에 대한 경계심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6년 만에 김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는데 북한 측이 수령을 거부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신 교환에 열려 있으며 2018년 싱가포르에서 이뤄진 진전을 다시 보길 원할 것’이라는 백악관 대변인의 설명을 들으면 트럼프 대통령의 구애가 일회성에 그칠 것 같지 않다. 다만, 시큰둥한 북한의 반응으로 볼 때 예전처럼 빈번한 친서 교환이 이뤄질지 의문이다.
전석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