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건강한 몸과 시간만 있으면 되니까요.”
지난 9일 서울 영등포구 헌혈의집. 세계 헌혈자의 날(6월 14일)을 앞두고 113번째 헌혈을 한 삼성전자서비스 가전 엔지니어 진우용(55·사진)씨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진씨는 혈액의 모든 성분을 채혈하는 전혈 헌혈을 꾸준히 하고 있다. 이날도 익숙한 듯 의자에 앉아 주사 바늘을 맞았다.
진씨의 첫 헌혈 경험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지만, 당시는 헌혈의 가치를 체감하진 못했다고 한다. 헌혈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진 건 직장생활 15년차였던 2010년 수원역 헌혈의집의 혈액 보유 현황을 본 뒤였다. 진씨는 “보유량이 2일 이하로 떨어진 것을 보고 바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 8년 뒤에는 헌혈이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일임을 실감하는 사건을 겪었다. 장모님이 허리 디스크 수술을 하다가 과다 출혈이 발생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명절 직전이라 헌혈이 줄어 혈액 보유량이 평소보다 적었다. 그는 “병원에서 피를 배정받지 못한다고 해서 수술 도중 큰 병원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고 급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진씨 장모님은 대학병원에서 8팩을 수혈한 끝에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이후 진씨는 최소 주기(전혈 기준)인 8주 간격으로 헌혈하고 있다. 그의 아내와 아들, 딸도 종종 헌혈에 동참한다. 진씨는 헌혈을 위해 기름진 음식이나 인스턴트 식품을 줄이고, 헌혈에 제한이 생기는 여행지도 피해왔다.
진씨의 목표는 헌혈 200회를 달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코로나19 때도 헌혈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헌혈을 하면) 이웃이 건강해지고, 서로 피를 나눈 형제도 될 수 있다”며 “내 시간만 조금 들이면 누군가 위험한 고비를 넘기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씨는 혼자가 아닌 많은 이들이 함께 헌혈을 하고 있다는 걸 느낄 때 더욱 뿌듯하다고 한다. 그는 “얼마 전 우리 아파트에서 아픈 주민을 위해 헌혈증을 모은 적이 있다”며 “기부하려 가보니 이미 모금함이 반은 넘게 차 있었다. 나만 헌혈하는 게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