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구식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모든 영화는 극장에서 봤을 때 더 좋다’는 말에 200% 동의한다. 콘텐츠에 최적화된 음향과 화면,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들의 차단. 그 공간에는 오직 영화, 그리고 영화를 감상하는 사람들뿐이다. 영화산업 관련 각종 수치를 뜯어보면 이젠 그런 감상 환경을 불편해하는 사람이 더 많은 듯도 하다.
얼마 전 실사 영화로 개봉한 ‘드래곤 길들이기’를 보러 갔다가 꽤 놀랐다. 주인공 히컵이 드래곤 투슬리스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장면, 바이킹과 용들의 싸움 등 역동적인 장면이 많아 4DX관 예매를 시도했다.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호평을 받긴 했지만 좋은 자리를 예매하기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프라이빗 상영관은 이미 매진이었다.
상영관에 들어서니 시야가 좋지 않은 몇 자리 빼고는 만석이었다. 애니메이션이 원작이라서 어린이 관객이 많을까 했지만 대부분 성인이었다. 움직이는 의자와 물, 바람, 향기가 뿜어져 나오는 각종 효과는 어른들을 신나게 했다. 지난달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때도 비슷했다. 액션 블록버스터물이다보니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긴 했지만 아이맥스관의 명당 자리는 개봉 몇 주가 지난 다음에야 예매가 가능한 듯했다.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일반 상영관은 그렇게 예매가 어렵지 않았다. 극장을 찾는 발길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는 뉴스도 아닌 지금, 일반 상영관보다 가격도 비싼 특별관에서는 예매 전쟁이 벌어진다. 특별관에서 보는 영화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모든 영화는 극장에서 봤을 때 더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적어도 그들에겐 극장에 가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미션 임파서블’을 n차 관람하는 사람들에겐 두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톰 크루즈라는 배우가 보여주는 경악할 만큼 아슬아슬한 액션에 도파민이 분출될 수도 있고, ‘미션 임파서블’이라는 시리즈에 대한 큰 애정이 있을 수 있다. 이번엔 어떤 액션을 보여줄까, 요원 헌트는 이번에도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살아 남을까 기대하는 것이다. 두터운 팬층을 유지하며 30년을 이어온 프랜차이즈라면 영화가 개봉했다는 것 자체로 극장에 가야 할 이유가 된다. 크루즈는 영화산업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극장에 갈 이유를 만들어주는 배우라는 점에서 높이 살 만하다. ‘그 사람 액션은 꼭 영화관에서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배우는 전 세계에서 흔치 않다.
‘드래곤 길들이기’를 4DX로 관람하는 사람들에겐 영화를 감상하는 게 아니라 체험하는 것이 더 큰 즐거움인지 모른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은 영화를 감상하기엔 충분하지만, 영화를 체험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프라이빗 상영관이 매진되는 건 극장 수준의 스크린과 사운드를 원하지만 공간 자체는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게 즐기려는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관객이 영화관에서 즐기는 게 감상이든 체험이든, 아니면 공간 자체이든 극장업을 비롯한 영화산업을 유지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된다. 영화 티켓 가격이 올라서 사람들이 극장에 잘 가지 않는다고들 한다. 하지만 일반관 대비 눈에 띄는 특별관 예매율은 관객들이 티켓값 자체보다는 비용 대비 심리적인 만족감을 중시한다는 것을 말한다.
올 상반기 내내 월 극장 관객수가 1000만명을 넘지 못했다. 영화업계는 전례없는 위기에서 벗어날 방법을 고민한다. ‘좋은 영화를 만들겠다’는 말도 좋지만 관객들이 극장에 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드는 데 산업 종사자들이 지략을 모아야 할 때다.
임세정 문화체육부 차장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