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해 12월 31일 “규제 권한의 절반을 덜어낸다는 각오로 ‘규제와의 전쟁’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지 166일이 지났다. 시는 오 시장의 전쟁 선포 이후 지금까지 규제 136건을 철폐했다. 하루 평균 0.8개의 규제가 사라진 것이다. 폐지된 규제는 경제·민생·복지·건설·교통 등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특히 건설 규제 철폐의 일환으로 제2·3종 일반주거지역 내 소규모 건축물의 용적률은 각각 200·250%에서 250·300%로 한시적으로 상향됐다.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고, 노후 연립·다세대주택을 개선하겠다는 취지였다. 문화·예술행사 개최 시 공원 내 상행위도 일부 허용됐다. 소상공인의 매출을 증가시키고 판로 확대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규제 철폐는 민관 의견을 폭넓게 수렴한 결과다. 시는 지난 1월 3일부터 4월 12일까지 ‘규제 철폐 100일 집중 추진 기간’을 두고 시민, 기업, 공무원들로부터 2500여건에 달하는 제안을 받았다. 이후 민생·건설 등 각 분야 전문가 8인으로 구성된 심의회의 검토를 거쳐 규제를 없애나갔다.
전쟁은 계속될 예정이다. 다음 달 규제 혁신을 전담할 국장급(3급) 조직이 신설된다. 서울시의회는 ‘규제개혁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조례 제·개정을 지원할 방침이다. 규제 철폐를 시스템화 해 시에 뿌리를 내리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걸림돌’ 제거로 민생 물줄기 바꾼다
오 시장은 지난 2월 ‘시 산하 투출기관 규제철폐 보고회’에서 규제를 “시대를 따라가지 못해 쌓인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경제 활성화에 방해가 되고, 시민들의 생활에 불편함을 주는 장애물이라고 봤다.
시는 ‘건설 분야 규제 철폐 TF’를 지난해 12월부터 운영해오고 있으며 관련 규제 41건을 철폐했다. 기업이 현실과 맞지 않는 규제로 겪는 불편함을 덜어주겠다는 의도였다. 건설 산업을 활성화해 성장을 견인하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소규모 건축물 대상 용적률 완화, 주거복합건물 내 상가 의무 비율 완화, 높이 규제 지역 공공기여 완화 등이 대표적 사례다.
시는 시민 일상을 불편하게 하는 규제도 차례로 철폐하고 있다. 공원 내 상행위가 일부 허용됐고, 주요 공공시설 이용시간이 연장됐다. 양재대로 자동차 전용도로도 해제됐다. 이렇게 사라진 규제만 95건이다.
시가 지금까지 내놓은 규제 철폐안 136건은 건설·주택 분야(41건), 행정·복지 분야(68건), 소상공인·기업 분야(21건), 교통·환경·안전 분야(6건)로 나뉜다. 시 관계자는 15일 “시민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수렴해 경제 규제뿐만 아니라 민생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도 적극 제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규제 철폐, 일회성 이벤트 아니다”
시는 규제 철폐를 일회성 이벤트로 다루지 않고 상시화하기 위한 체계도 구축한다. 다음 달 1일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규제 혁신을 전담 추진할 규제혁신 기획관 직위(3급)를 신설할 예정이다. 규제혁신기획관 산하에는 과장급(4급) 창의규제 담당관실과 규제개선 담당관실이 각각 마련된다. 또 민간 분야 전문가를 규제 총괄관으로 위촉해 전문가 조언에도 귀를 기울인다.
시의회는 지난 4월 규제개혁 특위를 구성했다. 특위는 국민의힘 시의원 9명, 더불어민주당 시의원 4명 등 초당적으로 구성됐다. 규제 철폐에 필요한 조례 제·개정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규제 철폐안이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을지 검토하고, 새롭게 제안할 규제 혁신 방안이 없을지도 살펴볼 방침이다.
시 산하 공사와 출자·출연기관 23곳도 규제 철폐에 동참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서울신용보증재단은 다른 지자체 신용보증재단의 보증을 이미 받은 기업에 대한 신규 보증 제한 규제를 철폐했다. 시 평생교육진흥원은 노년층 대상 평생 학습 프로그램 ‘7학년 교실’ 참여 연령을 만 70세에서 만 65세로 낮췄다.
정책 트렌드 선도한 ‘규제와의 전쟁’
오 시장의 규제 철폐 어젠다는 이번 대선 기간 정책 트렌드를 선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규제 철폐라는 구호가 여야 후보를 가리지 않고 논의됐다. 행정·경제·산업 등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공무원이 편의를 위해 만든 낡은 규제도 많다”며 “불필요한 규제는 정비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선서에서도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기업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규제는 네거티브 중심으로 변경하겠다”고 언급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규제혁신처를 신설해 다른 나라에 없는 여러 규제로 우리 산업이 발목 잡히지 않도록 하겠다”고 공약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는 “특정 산업을 기준으로 미국에 없는 규제는 한국에도 없도록 하겠다”며 “한국을 매력적인 투자처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15일 “오 시장의 규제 철폐 의제를 대선 후보들이 받아들인 것으로 본다”며 “규제와의 전쟁이 민생·경제 회복의 해법이라는 점에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시의 규제 철폐는 더 이상 필요성이 사라진 규제를 발굴해 없앤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혁우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난 5월 ‘규제 철폐 100일 성과보고회’에서 “규제를 만든 지방정부가 더 이상 쓸모가 사라진 규제에 대해 애프터 서비스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서울시의 규제 철폐는 좋은 애프터 서비스의 사례”라고 말했다.
김용헌 기자 y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