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 꿈도 못꾸던 청각장애 소녀 “영어교사 꿈 선물 받았죠”

입력 2025-06-13 03:00
캄미 찬탈라양이 최근 서울 강동구 한국구화학교 인근에서 “라오스 희망의손 학교 덕분에 자신이 꿈을 꾸게 됐다”고 수어로 설명하고 있다. 오른손 엄지를 세우고 왼손으로 받쳐든 모습은 ‘덕분에’란 의미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공부가 뭔지도 몰랐어요.”

라오스 비엔티안 인근 마을에서 태어난 청각장애 소녀 캄미 찬탈라(15)양은 집안일을 돕거나 TV를 보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그랬던 그가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좋아하는 과목이 생기고 ‘영어교사’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찬탈라양의 변화 뒤에는 5년 이상 라오스 청각장애 아동을 위해 헌신해 온 이혜자(58) 오상철(61) 선교사 부부의 노력이 있었다.

최근 서울 강동구 한국구화학교 인근에서 세 사람을 만났다. 찬탈라양은 수어로 또박또박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고 이 선교사는 옆에서 우리말로 통역했다. 이들은 이날 한국의 농아교육 현장을 직접 둘러봤다. 찬탈라양은 “청각장애인도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며 “입으로 말을 배울 수 있다면 나중에 아이들을 입말로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아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라오스에서 찬탈라양처럼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있는 농아인은 극히 드물다. 국가가 운영하는 일부 특수학교를 제외하면 농아인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때문에 라오스의 청각장애인에게 꿈을 꾸는 일은 사치에 가깝다. 농업이나 마사지업 등 제한적인 직업만 선택하는 현실이다. 라오스 교육체육부에 따르면 7만~8만명으로 추정되는 청각장애인 가운데 정규 교육을 받은 이는 약 2000명, 비장애인과 원활히 소통할 수 있는 농아인은 1000여명에 불과하다.

이런 라오스의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낀 이 선교사와 오 선교사는 청각장애 아동들이 안전한 공간에서 교육과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학교를 설립했다. 이 선교사와 오 선교사는 2012년 총회세계선교회(GMS)의 파송을 받아 라오스에 입국했다.

이혜자(왼쪽 두 번째) 오상철(맨 왼쪽) 선교사가 방한한 희망의손 학생들과 함께한 모습. 신석현 포토그래퍼

처음에는 오지에서 학교 건축 사역을 시작했다. 어린이 사역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던 두 선교사는 라오스 국립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며 전문성을 쌓았다. 이 선교사는 “일자리를 찾으러 지방에서 도시로 왔지만 마땅히 거처할 공간이 없어 방황하는 아이들을 알게 됐다”며 “도시로 올라온 지방 아이 중에는 청각장애 학생들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를 계기로 이 선교사 부부는 장애인센터를 설립했고 3년간의 준비 끝에 정식 학교로 인가받는 데 성공했다. 학교 이름은 손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꿈을 꾼다는 의미에서 ‘희망의손’으로 명명했다. 학교에서는 산수와 말하기, 듣기 수업을 제공한다. 교사를 충원하기 위해서는 능숙하게 수어 능력을 갖춘 이가 필요했다. 이 선교사는 “수어를 할 수 있는 교사를 찾던 중 과거 센터 학생이던 이들이 선생님으로 지원했다”며 “성인이 된 학생 중 두 사람이 자신들이 받은 도움을 후배이자 제자들에게 나누고 싶어한 것”이라고 밝혔다.

희망의손은 학생들에게 대가 없는 사랑을 전하면서도 이들이 받기에만 익숙하지 않도록 교육한다. 성탄절은 물론 라오스의 명절이 되면 희망의손 학생들은 동네 주민을 초청해 음식을 제공한다. 이 선교사는 “학생들이 비장애인들과 섞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길 원한다”며 “교육을 통해 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이들이 세상에 베푸는 삶을 살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공산주의 국가인 라오스의 특성상 희망의손은 공식적으로 종교교육을 진행할 수는 없다. 그러나 희망의손 학생들은 매주 주일예배를 드리며 복음을 접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학생 중 13명이 세례를 받았다.

올해 학기가 끝나면 희망의손 학교의 첫 졸업생 5명이 탄생한다. 라오스 교육체육부가 학교의 수준을 판단하기 위해 실시하는 장학검사에서 희망의손 학교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 선교사는 “라오스 내에서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하고 있지만 한국의 장애인 교육을 보면서 보다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한국의 수업을 참관하며 희망의손 아이들도 입으로 소리를 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