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그 천사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입력 2025-06-14 00:37

성경에는 천사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그 천사들은 르네상스 시대 거장 라파엘로의 ‘시스티나 성모’ 그림에 나오는 귀엽고 깜찍한 날개 달린 모습은 아니다. 오히려 근엄하고 건장한 남성 스타일이다. ‘여호와의 사자(使者)’로도 표현되는 이들은 주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사람에게 전하거나 인간사에 참여한다. 아이를 낳지 못했던 여인들에게 자식의 출생을 예고하기도 하고 죄악의 도시 소돔의 파괴에 가담하기도 한다. 예언자 엘리야에게는 음식을 가져다주기도 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를 알릴 때는 천군과 천사들이 단체로 출현해 신비로움을 더한다.

성경에 간간이 표현되는 천사 중 유독 그 이야기가 길게 나오는 구절이 있다. 바로 삼손의 출생 소식을 전하는 사사기(13장)에서다. 천사는 삼손이 태어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 뒤 곧장 사라지지만 다시 나타난다. 그것도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의 간절한 기도와 바람에 대한 응답으로 말이다. 성경 전체에 걸쳐 인간의 기도로 다시 출현한 천사는 이 천사 말고는 없는 것 같다.

때는 BC 12~13세기 고대 근동이다. 시대는 포악했고 선민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하나님을 잊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이민족을 보내 고통을 겪게 하신다. 백성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한다. 그들의 탄원을 들으신 하나님은 구원자인 사사(士師)를 보내 고난에서 해방시킨다. 사사기 400년은 이 사이클의 연속이다. 삼손이 태어날 무렵 이스라엘은 40년간 필리스티아(블레셋)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그때 한 천사가 삼손의 어머니에게 나타난다. 천사는 말하기를 아들을 낳을 것이니 이제부터 조심하고 포도주나 독주는 마시지 말라고 명령한다. 아이가 태어난 후 행동 지침에 대해서도 말한다. 머리를 깎지 말라면서 아이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기 때문이란다.

여인은 이 놀라운 얘기를 남편에게 전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너무 놀랍고 두려워 그 천사가 어디서 왔는지 묻지도 못했다고 얘기한다. 이 말을 들은 마노아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우리에게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오게 하셔서 태어날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가르치게 해주십시오.”

놀랍게도 하나님은 마노아의 기도를 들어주신다. 그 천사가 다시 나타난다. 이번에도 여인에게 먼저 나타났고 남편에게 알린다. 남편은 허겁지겁 달려와 천사를 마주하고 전에 나타났던 그 천사냐고 묻는다. 천사는 말한다. “내가 그 사람이다.” 신분을 확인한 마노아는 또 묻는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합니까.” 천사는 앞서 마노아의 아내에게 얘기했지만 다시 한번 친절하게 답해준다. 마노아는 천사를 위해 뭔가 대접하고 싶어진다. 새끼 염소를 잡아 대접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한다. 이렇게 대화를 나눴음에도 마노아는 그 사람이 천사인 줄 모른다.

그는 천사에게 이름을 알려 달라고, 그러면 아이가 태어날 때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자 천사는 자기 이름은 ‘비밀’(새번역성경)이라면서 공개를 거부한다. 이 부분에 대해 다른 성경은 ‘기묘자’(개역개정)로 번역하거나 “내 이름은 너무 신비롭지요”(새한글성경)로 번역했다. 성경에 천사의 실명 등장은 미가엘, 가브리엘이 유일하다.

마노아 부부 이야기는 우리네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몇 번은 천사를 만난다. 천사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들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모습을 드러내며 도움을 주거나 감동을 선사한다. 이제 와 생각하면 천사들이 등장했을 때 그저 깜짝 놀란 나머지 쳐다만 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을 다시 만나 인사하고 싶다. 그리고 밥도 사고 싶다. 그때 고마웠다고, 당신의 이름은 무엇이냐고. 마노아처럼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실까.

예수는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했다. 헐벗고 굶주리고 목마르며 갇혀 있는 사람을 돕는 것도 하나님의 사자를, 어쩌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일 수 있겠다.

신상목 종교국 부국장 smshin@kmib.co.kr